Ⅰ.

흰 백자 항아리를 돌 위에 둔 채 빛을 듬뿍 받은 수풀 속에서 맨몸으로 앉은 수화(樹話) 김환기가 있다.[도1] 화가의 뒤편으로 가득 우거진 이파리와 스스럼없이 내보인 그의 맨몸은 이 순간이 숲이 푸르고 따뜻한 날임을 짐작게 한다. 백자 항아리가 환히 비추어내는 빛의 편평함과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돌 표면의 거친 질감, 화가의 몸 위에 드리워진 잎의 뚜렷한 그림자는 특히나 지금이 해가 좋은 여름의 한때임을 말해 준다.
흰 항아리의 표면이 비추어 내는 부드러움과 어떠한 잉여의 기름기도 갖지 않은 단정한 모양새와 촉감은 담배를 문 채 천연덕스럽게 내 놓은 화가의 몸의 피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항아리가 숨을 쉬게 하기 위해 때때로 햇빛과 달빛 아래 바람을 들게 했다는 작가의 일화를 굳이 떠올리지 않아도, 이 사진은 항아리가 그에게 맨몸을 맞댈만한 따스한 체온을 가진 애정의 대상이었음을 실감하게 한다. 이에 더해 다음의 말들은 항아리로부터 살아있는 조형적 아름다움과 균형, 생명력을 감지하는 화가의 시선을 더욱 직접적으로 느껴지게 만든다.

한 아름 되는 백자 항아리를 보고 있으면 촉감이 동한다. 싸늘한 사기(砂器)로되 다사로운 김이 오른다. 사람이 어떻게 흙에다가 체온(體溫)을 넣었을까?[주1]

싸늘한 사기이지만 그 살결에는 다사로운 온도가 있다. 실로 조형미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과장이 아니라 나로선 미에 대한 개안(開眼)은 우리 항아리에서 비롯했다고 생각한다.[주2]

성북동 집의 우물가에서 화가와 함께 햇살을 맞던 항아리들은 실제로 그의 집 찬장을 가득 채웠을 뿐만 아니라 그의 화면 곳곳에 소재로 등장한다. (1956)에서 볼 수 있듯 집을 주제로 한 작품들 대부분에는 항아리가 함께 그려져 있는가 하면 그 자체가 숨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사람의 온기를 품은 동네나 집안에는 한켠에 항아리가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도2] 또한 인물과 함께 등장할 경우, 항아리는 주로 여인의 머리 위에 얹어지거나 품에 안겨져 있는데 몸에 그대로 안겨진 이 기물은 여인의 동그란 가슴이 그려내는 조형미와 호응되며 부드러운 살결로 스밀 듯한 촉각적 일체감을 전달한다.[도3] 매화나 사슴, 산 등과 함께 그려진 백자는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미적 유산이자 상징적 소재로서 자주 등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비록 가시적인 세계를 다룬다 하더라도 화가의 눈은 그것을 넘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응시한다. 그리고 그 무언가가 작가의 내면으로부터 기원했다면 그것은 그의 작품세계가 지나온 과거를 증거 하면서 한편 미래를 예시할 수 있다. 초기 추상에서 만년의 점화까지 김환기의 작품을 바라보면, 그다지도 항아리를 사랑했던 작가의 눈이 전통적인 소재와 미적 형태로서 도자기의 가시적 표상을 넘어서는 무언가와 대면했을 것이란 생각을 버리기가 어려운 것이다. 아끼고 보듬고 밖에 두고 안에 두면서, 작가에게 항아리는 취향과 소유의 대상으로서 그저 아끼는 애장품, 혹은 바라보기 만족하는 완상(玩賞)의 대상을 넘어 하나의 예술적 지향, 비가시적 정신, 경험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특히 섬세하고 시적인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었던 그의 글들은 일면 도자기가 조형적, 형태적 완성을 구현한 예술품 이었을 뿐만 아니라 - 마치 '사랑가' 속의 연인을 떠올리듯, 앞으로 보고 뒤로 보고 멀리 놔 보고 얼러보는 - 심미적이고 정서적인 애착의 대상이었으며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자리했음을 짐작게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본다면 도자기는 그것이 화면에 그려져 있건 그렇지 않건 김환기의 작품세계를 이끄는 하나의 무의식적 동인(動因)으로서 변함없이 자리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작가는 1963년, 뉴욕으로 옮겨 간 이후 점차 형상을 떠나 무수한 점(點)의 세계로 진입했다. 그는 점화 속에서 비로소 개별적인 점 하나하나가 번져나가 서로 섞이고 만나며 모여 하나의 전체적 울림을 불러 오는 숭고한 세계를 이루어냈다. 많은 연구들은 점화를 추상적 형식의 이동으로, 마침내 완성된 김환기의 추상세계로 언급한다.
결정적 경험은 인간의 의식 속에서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상식에 이 글은 근거한다. 그리하여 항아리와 도자기라는 모티브가 작가의 만년의 점화까지 어떻게 암시적으로 나타나는지를 탐색해 보고자 한다. 작품과의 대면과 작가의 글이 중요한 바탕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김환기에게 있어 항아리의 세계는 어디를 향해 간 것일까?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도자기는 어느덧 어디에 '숨은' 것일까? 작가에게 "개안(開眼)", 즉 미술에 있어 하나의 조형적 전환, '눈 뜸'의 계기가 된 흰 항아리는 점화 속 어디에 닻을 내렸을까?

Ⅱ. 물레의 결

흔히 도자기, 그중에서도 백자는 우아미(優雅美)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특히나 그 단순한 형태와 순백의 색감으로 인해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논할 때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것이 바로 백자이다. 또한 '관조'나 '고요'와 같은 키워드와 더불어 한국적인 미, 한국성에 관한 논의에 적극적으로 활용되어 온 것 역시 사실이다.
김환기 역시 백자의 미적 가치를 체득하고 있음은 여러 글과 그가 남긴 작품들 속에서 분명히 알 수 있다. 아래와 같은 말은 항아리에 대한 그의 미의식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나는 아직 우리 항아리의 결점을 보지 못했다. 둥글다 해서 다 같지가 않다. 모두가 흰 빛깔이다. 그 흰 빛깔이 모두가 다르다. 단순한 원형이, 단순한 순백이, 그렇게 복잡하고, 그렇게 미묘하고, 그렇게 불가사의한 미를 발산할 수가 없다.[주3]

이 부분만을 보면 언뜻 그 역시 도자기에 대한 다소 전형적인 미의식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이 말에 이어지는 다음의 문장은 백자가 가진 또 다른 성격을 포착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고요하기만 한 우리 항아리엔 움직임이 있고 속력이 있다.[주4]

도자는 흙이 굳어진 완성된 물건으로서 존재한다. 특히나 백자의 경우 단일한 색조와 형태의 단순함으로 인해 시각적 역동성을 이루어내는 요소가 분명치 않으며 매우 미묘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김환기는 과연 도자기의 무엇에서 '움직임'을 감지하였으며, 더군다나 '속력'까지를 발견하였을까.
이와 같은 질문은 또 다른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보게 만든다.[도4] 뉴욕에 있었을 1964년, 그가 직접 촬영한 이 사진은 조선 백자 불기를 찍은 것이다. 작품사진이라고 하기는 어려울 수 있겠으나 즉각적으로 순간을 담는 이와 같은 사진 이미지는 무심결에 포착되는 작가의 시선을 직접적으로 느끼게 한다는 점에서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리고 바로 사진 속의 순간에서 감지되는 것은 손끝에 닿을 만큼, 무척이나 부드럽고 촉각적인 감성으로 순백의 도자에 다가서려는 작가의 강렬하고 조심스러운 희구(希求)이다. 화면 가득 백자를 중심에 둔 이미지는 너무나 가까이 끌어당겨 대상의 초점이 흔들려 보일 정도이며 그 흰 표면을, 피부를 포착하려 한 촬영자의 의도가 역력히 느껴진다. 한 쪽에서 쏟아져 들어오며 부서지는 실내의 햇살 아래, 작가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릇의 "살결"이 그 햇살을 가득 비추어내고 있는 것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에서 흐릿하게 드러나는 그릇의 피부는 분명히 무언가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 무언가는 눈에 확연히 드러나기보다는 창밖으로부터 스며들어온 빛 속에서 저절로,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리고 이때 흰 색의 백자는 단순히 매끄럽고 깔끔히 마감되어 더 이상 손 볼 곳 없이 깨끗이 완성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사진 속 백자는 완료형의 조형이 아니라 진행형의 조형을 보여준다. 물레의 결로 인해 미묘하게 드러나는 표면의 일렁임은 지금은 단단히 경화되어 하나의 결정체로 자리한 이 그릇의 근원적 존재 상태를 떠올린다. 무엇보다도 이와 같은 상태는 한 점의 자기가 만들어지기 전부터 원래 가지고 있던 흙으로서의 그 자연적 속성, 즉 물과 섞여 인간의 손에 부드럽게 반응하면서도 스스로의 모습을 조금씩 이루어 나가는 '되어가는 상태'로서의 존재감을 환기시킨다.
희미한 빛 속에 나타나는 이 물레의 결은, 계절의 순환과 함께 켜켜이 더해가는 나무의 결과 같다. 그것은 더해짐의 결, 생성의 결이다. 뿐만 아니다. 한 층이 지나가면 곧이어 다음 층이 올라가며 끊임없이 연속되는 과거와 미래의 시간, 순간의 연속과 축적의 결에 가깝다. 이와 같은 물레의 흔적은 앞에서 살펴보았던 우물가의 사진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그리고 사진을 찍은 촬영자의 눈으로, 김환기의 눈으로, 이 사실을 유념한 채 우리의 도자기를 바라보면, 매끄러워 보이는 몸체의 수면 위로 물결처럼 파장을 이루며 퍼져 나가는 물레 흔적이 떠오른다. 특히 아무런 무늬가 더해지지 않은 순백자의 경우, 그 흔적은 공기 중의 바람처럼 쉽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섬세하고 집중된, 반복적이며 순환적인 선의 움직임을 이루어 낸다. 보이지 않는 물레의 회전속도는 동세의 에너지를 도자의 표면에 전달하면서도 비로소 그 흔적을 통해 속도, 궁극적으로 '시간'을 시각화하는 것이다. 물레의 결과 관련하여 김환기의 입체작품들 중 (1968)는 흥미롭다.[도5] 그는 화폭 속 백자의 모습과 꼭 같은 굽이 높고 둥근 항아리를 만들어 놓았다. 같은 시기 그의 작품 (1968)을 떠올릴 정도로 전체적 느낌은 회화 작업과 유사하다.[도6] 회청색의 바탕 위에 색색의 점이 보이는데, 오브제 작업에서는 그 표면이 물레의 결을 떠올리는 반복적인 선들로 둘러져 있는 것이다.
움직임의 인상이란 시간에 따른 변화를 전제한다. 깊은 물 앞에서 우리는 고요와 적요를 느낀다. 잎들이 물에 내려앉아 물결을 따라 흐를 때야 비로소, 홀로 물이 존재할 때에는 느낄 수 없었던 물결의 흐름을 감지하는 것처럼 백자 항아리에 깃든 시간은 물레의 결을 통해 흘러간다. 작가의 눈은 고요는 고요이되 변화와 시간이 함께 살아 생생히 움직이는 고요, 그리하여 속력이 부여하는 자장(磁場)과 긴장감, 밀고 당김의 역학 관계가 고스란히 함께 존재하는 고요의 세계를 응시한다. 이 세계는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세계이며 우아하고도 소박한 세계이다. 무명의 도공들이 만든 그릇 속에서 그지없이 진솔한 숭고미를 발견하듯. 백자 항아리는 이와 같은 고요 속의 속도라는 역설을 끌어안으면서도 동시에 분명히 이를 현전하는 하나의 미적 상징으로 태어난다.

Ⅲ. 물 - 불

1963년에 뉴욕에 도착한 후 작가는 면이 강조된 전체 화면에 부분적인 형태가 그려지는 회화 작업에 몰두한다. (1965)[도7]은 이전의 구상 작업에서도 자주 쓰이던 청색 빛의 바탕에 적, 녹, 청의 기본적인 색조로 점의 형태를 그린 작품이다. 같은 청색 빛이라 하더라도 그 명도나 질감, 붓 터치에 변주를 두어 화면에는 일렁거리는 느낌이 감돈다. 같은 시기 <24-Ⅷ-65 남동풍>(1965)[도8]에서는 보다 면적인 느낌에 큰 형태감을 갖춘 원과 사각형의 모티브가 보이는데 흰색이 섞인 하늘과 분홍빛이면서도 탁한 느낌보다는 오히려 증기로 찬 공기층과 같이 모호하면서도 신비로운 느낌을 전달한다. 주조색인 이 두색은 따뜻하면서도 청량한 바람, "남동풍"이라는 제목과 잘 어울린다. 또한 그의 일기에서도 자주 언급되는 존경했던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와의 공감을 엿볼 수 있기도 하다.[주5][도9, 도10]
그 후 김환기는 작은 점 하나하나를 찍어 하나의 화면을 구축하는 점의 세계로 나아간다. 1968년 1월의 작가의 일기에서 작가는 "선보다는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라고 말한다.[주6] 그는 "서울을 생각하며 오만가지 생각하며",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주7] 이와 같은 작가의 말을 직접적으로 떠올리지 않더라도, 그의 점은 작은 점으로 가득 찬 큰 폭의 화면을 통해 탁 트인 밤하늘과 같은 무한함, 끊임없이 확장되고 퍼져가는 울림을 경험케 한다.
이와 같은 화면의 울림은 그가 점을 찍어가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점'이란 기본적으로 개별적인 존재이다. 그러나 그의 점은 '경계가 흐릿한' 점이다. 그 점은 번져나간다. 이 번짐은 하나의 점을 다른 하나의 점과 만나게 하며 각각의 점에 생동감을 부여한다.
결국 이 점들은 다른 점과 만나기 위해 번져나간다. 그리고 그 점들은 캔버스에 '그려진' 것이라기보다는 '적셔진' 것에 가깝다.[도11] 이와 같은 화면은 그가 오랫동안 '물'이라는 섬세한 매체를 조형적 매개로 삼았다는 사실을 떠올리게 한다. 김환기는 마포에 작업하여 물의 번짐을 더욱 효과적으로 유도하기도 했으며, 오브제 작업에 있어서도 종이죽을 활용해 '스밈'의 과정을 실험하였다. 이와 같은 물과 같은 액체성, 그의 작품들이 보여주는 투명하되 탁하지 않은 색조와 정서는, 면이 강조되었던 추상화들에서도 감지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번짐과 스밈은 점화에서 가장 선명하게 나타난다. 곡선적인 구성을 도입하여 점들의 운동감을 증폭시킨 <05-Ⅳ-71 #200>(1971)[도12]와 같은 작품에서는 점 하나하나가 화폭의 올과 촉촉한 물을 따라 움직인다. 이렇게 이룬 점의 형태는 그 곁의 다른 점과 만나며 그 번짐을 통해 화폭 안으로 젖어 들어가는 깊이감을 이루어낸다. 점의 움직임은 점과 점으로 이어지는 확장이면서도 동시에 캔버스 속으로의 침투이다. 그리고 이와 같은 입체적인 생동감은 작품의 또 다른 제목이라 추정되는 "우주"처럼 하나의 거대한 질서의 화음을 이룬다.[주8]
한편 번짐은 끊이지 않은 것, 연속적인 것이다. 점의 운행은 작가의 손에서 이루어지지만 개별 점의 번짐은 우연과 불확정성을 허용한다. 의도와 우연의 적절한 조합은 우주와 자연, 삶의 원리와도 같이 '점의 운명'으로 가득 찬 화면을 이루어낸다. 도공이 흙과 물, 물레로 도자기를 만들지만 결국 불이라는 섬세한 변수를 통해 그 조형적 결과물을 빚어내듯 말이다. 그리고 이 점들은 그 번짐으로 인해 꿈틀거리며 '되어가는' 가능태(可能態)로서, 또한 형태를 향해 존재하는 근본적 씨앗으로서의 생동감을 획득한다.
김환기의 점들은 불빛처럼 흔들린다.[도13] 흔들림은 어떤 것일까? 흔들림은 환영을 창출한다. 마치 개체가 스스로 움직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특히나 물의 원리에 따라, 물을 타고 움직인 이 빛깔들은 마치 자연계의 생명처럼 연속적이고 유기적인 시간성을 담지하고 있다. 그리고 흔들림으로 얻어진 이 움직임은 시간성이 존재하기 위한 전제조건이다. '정지'에서 우리는 멈춰있음, 시간이 흐르지 않음을 느낀다. 그러나 움직임의 상대적 개념으로서 존재 가능한 정지와 달리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 적막에서 느끼는 것은 시간성의 사라짐, 생명으로부터의 탈피이다. 그것은 죽음에 가깝기에 두려움을 촉발하며 영원과 통해 있기에 경외감과 닿아있다. 그러나 번짐과 스밈이 창출하는 이 생동감은 작품 전체에 하나의 시간성을 부여한다. 흔들리는, 그리하여 살아있는 이 점들은 마치 종소리의 파장이 공기 중에 번져나가듯 음악적 울림과 화음을 일구어낸다. - 그지없이 미묘하고 섬세한 일렁거림, 흰 항아리의 표면을 펼쳐 물레의 결을 바라볼 때 만날 수 있을 법한.

Ⅳ. 사금파리의 빛

작은 드로잉 작품 (1957)는 작가의 초기작에서부터 드러나는 달과 항아리의 연결을 보여주는 흥미로운 작품이다.[도14] '달 항아리'라는 말이 보여주듯 흰 백자 항아리는 색감뿐만 아니라 그 둥글고 원만한 형태로 말미암아 오랫동안 달에 은유되어 왔다. 종이에 과슈와 펜으로 그려진 이 작품은 이미지만으로는 밑에서부터 바라본 도자의 형태와 그 정면 상을 병치해 놓은 것 같지만, 작품 제목은 이것이 달과 항아리라는 두 개의 다른 소재를 그린 것임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나 더욱 흥미로운 것은 항아리와 달을 '빛'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생각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곳곳에서 짐작할 수 있는데, 그의 화면에서는 달의 위치에 버금가게 그려진 항아리들을 종종 볼 수 있다.[도15, 도16] 뿐만 아니라 작가는 다음과 같이 항아리가 비추어내는 빛의 느낌에 감탄한 바 있다. 태양과 조응하여 미묘한 변화를 창조하고, 달빛을 흡수하는 항아리들은 빛의 은유가 된다.

희고 맑은 살에 구름이 떠가고 그늘이 지고 시시각각 태양의 농도에 따라 청백자 항아리는 미묘한 변화를 창조한다. 칠야삼경(漆夜三更)에도 뜰에 나서면 허연 항아리가 엄연하여 마음이 든든하고 더욱이 달밤일 때면 항아리가 흡수하는 월광으로 인해 온통 내 뜰에 달이 꽉 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달과 항아리를 빛으로 연결하는 작가의 의식은 구상과 추상을 이어주는 작가적 발상, 하나의 연결점이 될 수 있다. 특히 그가 구상, 즉 완결된 대상의 형태에서 점점 벗어나 점이라는 지극히 환원적이며 근본적인 조형 요소로 돌아갔을 때 그의 화면에서 느껴지는 것이 일렁거리는 빛의 느낌임은 흥미롭게 다가온다.
작가에게 항아리는 빛을 시각화하는 매개가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태양빛과 달빛은 항아리에 닿았을 때 비로소 하나의 가시적이면서도 촉각적인 대상으로 태어난다. 항아리가 빛 자체를 담고 있으며 그 빛을 은유한다면, 그의 점화 속의 점은 입자로서의 빛이 아닐까. 화면의 일렁거림은 그 입자가 모여 발산하는 빛의 생동감이다.
한편 이때 그가 '파편'이 가지고 있는 미적 의미에 주목해 왔다는 사실은 더욱 흥미롭게 다가온다.

산산이 부서진 루오의 그림을 생각해 본다. 그 어느 조각을 들고 보아도 보석처럼 찬란히 빛날 것만 같다. 마티에르란 진실로 이러한 것이 아닐까?[주9]

아깝게도 목이 떨어졌고 양 귀가 떨어졌고, 그것은 할 수 없다. (…) 이 처참하게 된 불상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아름다울까.[주10]

또한 파편에 대한 작가의 감탄은 그가 항아리 수집을 그만두게 된 계기를 떠올린다. 피난살이를 마치고 집 뜰에 들어왔을 때 그 뜰은 온통 항아리의 파편 천지였다고 한다. 그런데 그 순간, 작가가 느낀 것은 절망감이 아니었다. 사금파리 무더기에서 그가 느낀 것은, “이상한 충격” - “통쾌감”이었다.[주11] 그리고 그러했기에, 그는 부산피난 후 사금파리의 빛을 마주 했었던 목소리로 뉴욕에서도 “부수는 용기”[주12] 를 역설할 수 있었을 것이다.

Ⅴ.

김환기는 우리나라 작가 중 비교적 많은 글에서 다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고전이 계속해서 읽혀지고 해석되듯, 그의 작품세계 역시 다양한 맥락에서 더욱 풍성한 논의로 전개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작가 스스로 도자를 비롯한 과거의 조형에서 풍요로운 의미를 발견했던 것과도 상통한다. 한국의 도자기, 특히 달항아리와 같은 백자는 작가에게 과거의 정신적 유산으로서 그 정점에 서 있는 것이었으며, "그 포름 색질감(色質感), 그리고 그놈이 발산하는 공간의 지배"[주13]는 하나의 조형적 지향점이 되었던 것이다.
한편 항아리는 작가에게 보다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의미로서, 자연의 빛을 비추어내는 매개이자 빛의 상징이 되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 파편이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존재의 아름다움과 빛을 비추어 내듯, 화폭 속의 점들은 자연스러운 번짐과 스밈을 통해 시간 속에서 서서히 하나하나 떠오른다.[도17] 파편의 빛은 깨어지지 않은 항아리가 보여주는 형태미와 선의 유려함만큼이나 완전할 수 있다. 빛의 입자는 존재의 개별성을 지닌 채 물로 섞여 응집된다. 그리고 그 응집의 힘은 물의 번짐과 스밈으로 그 속도를 조절하면서 화폭 속에 공명하는 울림을 전달한다. 그 울림의 확 터 있음과 무심함, 부서진 항아리에서 느꼈던 그 이상한 해방감이야말로 형태를 벗고 점으로 환원한 화폭의 자유로움을 낳은 것이 아닐까?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1962)는 예술적 이미지의 교감을 이야기하면서, 작가의 상상력을 떠올리는 독자의 상상력이 감동이라는 정신적 체험을 환기시킬 수 있음을 말한 바 있다. 그 연상의 끈을 타고 올라가면 김환기의 화폭에서 항아리는 파편으로, 파편은 빛으로, 빛은 점으로 번져 나간다. 그리고 이 때 점은 비로소, 작가의 표현처럼 [주14], 빛이 되어 '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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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5. 5, 김환기, 「청백자 항아리」,『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환기재단, 2005), 117면.

2)「항아리」, 앞의 책, 228면.

3) 앞의 책, 228면.

4) 앞의 책, 228면.

5) 김환기는 그의 일기에서 “Mark Rothko가 어제 팔 동맥을 잘라 자살한 기사에 놀라다. 내 가장 존경하는 예술가가 비명에 가다니.”라고 말한 바 있다. (앞의 책, 324면)

6) 앞의 책, 315면.

7) 앞의 책, 322, 366면.

8) 『김환기 30주기 기념전: 사람은 가고 예술은 남다』(환기미술관, 2004) 도록에는

도2 <성북동집>, 1956, 캔버스에 유채, 100x65cm
도3 <여인들과 항아리>(부분), 1950년대, 캔버스에 유채, 210x460cm
도5 <오브제(항아리)>, 1968, 파피에 마쉐, 36.5x26.5x26.5cm
도6 <이른 아침>, 1968, 캔버스에 유채, 176x126cm, 개인소장
도7 <작품>, 1965, 캔버스에 유채, 177.3x126.5cm, 개인소장
도8 <24-Ⅷ-65 남동풍>, 1965, 캔버스에 유채, 178x127cm, 개인소장
도9 마크 로스코,[No10], 1949, 캔버스에 유채, 141x81.4cm, National Gallery of Art, Washington
도10 마크 로스코,[No7
도11 <26-Ⅷ-70>, 1970, 캔버스에 유채, 75x68cm, 개인소장
도12 <05-Ⅳ-71 #200>, 1971, 캔버스에 유채, 254x254cm, 개인소장
도14 <달과 항아리>, 1958, 종이에 과슈, 펜, 31.5x21cm
도15 <달과 항아리>, 1954, 캔버스에 유채, 162.2x97cm
도16 <백자와 꽃>, 1949, 합판 위에 유채, 40.5x60cm
도17 <14-Ⅲ-72>, 1972, 캔버스에 유채, 250x199.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