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조의 얼굴.

유비(劉備), 손권(孫權)과 함께 중국의 패권을 다투었던 조조(曹操·155~220)의 무덤이 사후 1789년 만에 허난(河南)성에서 발견됐다고 인민일보를 비롯한 중국 언론이 27일 일제히 보도했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에는 의심이 많았던 조조가 사후 자신의 무덤이 도굴될 것을 우려해 72개의 의총(疑塚·가짜 무덤)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지금까지 그의 무덤 위치는 정확히 확인되지 않았다.

허난성 문물국은 이날 베이징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허난성 안양(安陽)현에 있는 동한(東漢)시대의 무덤을 발굴하는 과정에서 문헌으로만 전해져오던 위(魏) 무왕(武王) 조조의 진짜 무덤인 '고릉(高陵)'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안양현은 조조가 숨진 곳으로 문헌에 나오는 뤄양(洛陽)에서 동북쪽으로 230㎞가량 떨어져 있다.

전형적인 토갱(土坑)묘인 고릉은 깊이 15m가량에 길이 60m, 넓이 740㎡의 대형 무덤이다. '중(中)'자 형태로 된 무덤은 동서 방향으로 통로가 나 있고, 천장부와 묘실, 통로 등은 모두 벽돌로 건축돼 있었다. 허난성 문물국은 이 무덤이 여러 차례 도굴된 흔적이 발견됐지만 금은 같은 보석류와 도기(陶器), 철제 갑옷, 철검, 비석 등 250여 점의 부장품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고고학자들은 부장품 중 '위 무왕이 사용했다'는 명문(銘文)이 새겨진 창과 돌베개를 근거로 이 무덤이 조조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무덤에서는 또 60대로 추정되는 남성과 20대, 40대로 보이는 여성 등 3명의 유골이 발견됐다. 남성 유골의 연령대는 역사 기록에 나오는 조조의 사망 시 연령(66세)과 비슷하다고 중국 언론은 보도했다. 조조는 정치적으로 실권을 잡았으나 스스로 제위에 오르지는 않았고 사후에 무왕(武王)으로 추존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