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꾸똥꾸 때문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심의위원들은 요즘 이런 한숨을 내쉴 법도 하다. MBC TV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주인공 정해리(진지희)가 사용하는 단어 "빵꾸똥꾸"에 대해 방통심의위는 "다른 어린이 시청자들이 모방할 가능성이 있어 올바른 가치관과 행동양식 형성에 악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이 같은 용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고 22일 밝혔다.

이 같은 심의 결정이 알려지자 '빵꾸똥꾸'는 인기검색어로 떠올랐고, 일부에선 "이해할 수 없는 심의기준"이라는 반박이 쏟아졌다. 심의 결정이 오히려 "빵꾸똥꾸"란 말을 화제로 만든 뜻밖의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MBC TV 일일시트콤‘지붕 뚫고 하이킥’에 나오는 해리(지진희)와 신애(서신애). 22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방송에서 해리가 짜증나고 기분 나쁠 때마다 외치는“빵꾸똥꾸”란 단어를 사용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아이들이 따라 할까 두렵다"

방송통신심의위측은 이번 결정이 시청자 민원에서 출발한 것이라고 해명한다. 상당수 시청자가 "방송을 볼 때마다 아이들이 따라 할까 걱정된다"고 민원을 했다는 것. 한 심의 연구위원은 "방송 시간이 가족들이 함께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 같이 볼 수 있는 오후 7시 45분이다. 방송은 15세 이상 시청가능 등급이지만, 실제로는 이렇게 정확히 시청지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해서 권고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밝은청소년지원센터 지정순 미디어전문위원 역시 "방송을 보고 '걱정된다'는 학부모 전화를 여러 차례 받았다. 심의위원회 입장에선 꼭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정이라고 본다. 방송에서 어떤 뜻으로 사용했는지는 이해가 되지만, 좀 더 순화한 다른 단어로도 충분히 표현할 수 있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맥락 전체를 봐야 제대로 된 심의"

반대도 많다. 개그맨 남희석은 22일 "빵꾸똥꾸가 권고조치를 받았다. 이젠 '방귀대장 뿡뿡이'도 방송에서 못 볼까 걱정된다"고 비꼬았고, 가수 서태지는 논란이 한창 일던 24일 팬들에게 쓴 편지 제목을 "메리메리 빵꾸똥꾸"라고 달았다. 22~24일 방송통신심의위 게시판엔 권고 조치에 대한 항의글이 20여건 올라왔다. 시청자 김지훈씨는 "방송 언어순화를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언어 의미를 단순히 외형만 가지고 판단해선 곤란하다고 생각한다. 언어가 사용된 상황과 맥락에 대한 고찰이 없는 결정"이라고 썼다. 시청자 이원영씨 역시 "1980년대 시민단체들은 '아기공룡 둘리'를 불량만화로 규정하고 불매운동을 했다. 아기공룡 둘리가 어른 고길동에게 반말한다는 게 이유였다. 하지만 이제 '아기공룡 둘리'는 명랑만화의 대표작이다. 부분만 보고 전체 내용을 판단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심의 결과 이해하지만, 설명 부족했다"

비속어를 심의하고 규제해야 하는 입장은 수긍이 가지만, 시청자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방송개혁시민연대 김강원 대표는 "이번 심의결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숙제를 남긴 경우"라고 말했다. 막말 방송을 규제하겠다는 방송통신심의위 뜻은 이해하지만, 시청자들에게 왜 문제가 되는지 충분히 설명했어야 했다는 것. 김 대표는 "'빵꾸똥꾸'란 단어 자체는 사실 어찌 보면 아무 뜻 없는 의성어로 볼 수도 있다. 막말로 물의를 일으키는 방송 또는 불륜과 복수극으로 일관하는 방송이 여전히 나오는 상황에서, 어떤 방송을 어떤 근거로 규제해야 하는지 고민을 남겨준 경우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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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반토론] "빵꾸똥꾸" 권고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