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7년 겨울. 고등학교 1학년을 마친 뒤 학교를 그만두고 '하자센터'에서 수업을 듣던 이보라(19)양은 자신의 고민을 글쓰기 담당 선생님께 심각하게 물었다. "전 제가 뭔지 모르겠어요. 학교를 다니진 않지만 홈스쿨러나 문제아는 아니거든요. 저를 뭐라 불러야 할까요. 전 집보다는 길에서 먹고 자고 배운단 말이에요."

"길에서 공부하니까, 로드스쿨러(Roadschooler) 어때?"

그후 이양은 학교를 뛰쳐나와 세상 속에서 배우는 사람들을 '로드스쿨러'라 명명하고 뜻을 같이할 사람들을 모았다. 이때 모인 동료들이 바로 금강산(19)양, 변혜지(18)양, 이수현(19)양 등 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 참가하면서 알게 된 예닐곱명. 이들 중에는 이양처럼 자퇴를 했거나 대안학교 또는 일반고를 다니는 경우도 있었지만 모두 제도권 교육에 답답함을 느끼고 학교 밖의 배움을 스스로 찾아다닌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서로를 '고정희청소년문학상'을 매개로 만났다 하여 고글리(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만나 글도 쓰고 문화작업도 하는 사람들의 마을(里))라고 줄여 말하고, 일주일에 한 차례씩 만나 토론하고 글을 쓰며 여행을 다녔다.

"문제아? 저희는 로드스쿨러예요"

대안학교인 성미산 학교와 하자작업장학교에서 수학한 금강산양은 지난 2006년 고정희청소년문학상에서 문광부장관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고글리가 됐다.

변혜지양은 제도권 학교의 치열한 경쟁이 싫어 자퇴를 원했지만, 부모님의 반대로 일반계고에서 예고 문예창작학과로 편입한 경우. 당장은 필요가 없는 국어, 수학을 배우기보다는 좋아하는 분야의 공부를 파고들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하자센터에서 글쓰기 수업을 듣다 고글리를 알게 된 후 능동적으로 참여했다. 여행을 따라가기 위해 학교가는 것도 빼먹을 만큼 열성적이었다. 백일장 입상 수상실적으로 대학 합격이 결정됐지만 그는 아직도 대학생보다는 로드스쿨러라는 단어가 더 좋다고 했다.

자칭·타칭 로드스쿨러를 희망하는 금강산(좌), 변혜지(가운데), 이수현(우)양.

"주변 친구들을 보면 본인이 왜 공부를 하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에요. 정말 글이 좋아서 작가를 꿈꾸거나 백일장에 참가한 경우가 드물죠. 저는 어떤 이유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하는 공부보다는 그냥 알고 싶고, 관심 있어서 하는 공부가 더 좋았어요. 그런 면에서 고글리 활동이 좋았지요."

이수현양은 일반계고를 졸업하고 대학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학교밖의 배움을 소중히 여긴다. 현재 그는 고글리 활동과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경험 쌓기에 매진하고 있다. 그는 "여행, 아르바이트, 연애 등이 다 공부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고글리가 한 해 동안 주력한 프로젝트는 바로 여행. '여행을 통한 배움'을 모토로 하는 여행스쿨이다. 문화체육관광부 주최 청주 공공미술 프로젝트에 참여하기 위해 열흘간 청주 여행을 떠났고, 경주 곳곳을 누비며 신라의 흐름을 좇기도 했다. 이보라양의 얘기다. "길에서 배우는 것이 참 많아요.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저만의 가치관을 깨고 다른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었죠. 제가 생각하고 있는 것만이 진리가 아닐 수 있음도 깨달았어요."

변혜지양은 "함께 먹고 치우고 자고 공부하는 공동 작업을 하면서 삶과 배움과 일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님을 몸으로 체험했다. 다락방이든, 공원이든 여왕의 무덤 앞이든 질문하고 궁금한 것을 추적해나가는 작업이 즐거웠다"고 했다.

이들은 서로 별명을 부른다. 이보라양은 '보라', 금강산양은 '산', 이수현양은 '따오', 변혜지양은 '여탐' 식이다. 이양은 "나이를 잊고 서로 동등한 입장에서 대하자는 의미"라고 말했다.

환상은 금물, 치열하게 자기 관리를 해야 성공

이들의 행보가 항상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실망하는 부모님이나 주위의 따가운 시선 앞에서 어쩔 수 없이 움츠러들 때도 많았다. 일례로 금강산양은 아침에 교복을 입지 않은 채 청소년용 교통카드로 버스를 탈 때마다 이상한 눈초리와 "저런 애랑 놀지 말라"고 했던 단짝 친구 엄마의 말 때문에 상처도 받았다.

하지만 그들을 가장 힘들게 한 것은 로드스쿨러를 '학교가 싫어 선택한 쉬운 대안'쯤으로 여기는 주위의 편견이다. 금양은 "로드스쿨러는 결코 만만하거나 낭만적인 것이 아니다. 끝없는 갈림길에서 외롭게 선택해야 하고, 없는 길도 만들어가야 한다. 모든 선택을 스스로 해야 하며 책임도 스스로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양은 학교에 적응하지 못해 로드스쿨러를 염두에 두는 후배들에게 충고를 아끼지 않았다. "'나의 학교는 내가 만든다'는 원칙으로 철저히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실패하기 십상이에요.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을 기록해 스스로 시간표롤 짜고 따라야 시간 낭비하는 것을 막을 수 있어요. 또한 이해해주고 지지해주고 때론 날선 평가도 서슴지 않는 부모님, 멘토, 친구도 있어야 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