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민주당 정권이 268억엔으로 잡혀 있던 차세대 수퍼컴퓨터 예산을 보류하자 25일 노벨상 수상 일본 과학자 4명이 도쿄대에 모여 항의 성명을 발표했다. 공학도 출신 하토야마가 총리가 돼서 기대가 컸는데 배반당했다는 것이다. 반면 미국 과학계는 오바마 행정부가 에너지 분야 등에 연방 예산을 집중 투입키로 해 얼굴색이 환해졌다는 보도다.

▶과학역사학자인 영국 버킹엄대학 부총장 테렌스 킬리 교수는 국가가 나서서 과학 연구를 지원하는 나라의 과학기술이 되레 쇠퇴했다고 주장했다(과학연구의 경제법칙). 18~19세기 정부가 과학아카데미에 돈을 퍼주고, 과학 전문지를 만들고, 화학연구소를 세웠던 프랑스의 과학기술은 영국에 크게 뒤처졌다. 영국은 세금을 줄이는 대신 민간 분야 지원을 하지 않는 자유 방임 정책으로 성공했다. 미국도 정부가 연구 지원을 확대한 시기에 경제가 쇠퇴했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에게 돈을 타내려면 연구 타당성을 입증하기 위한 기다란 보고서를 내야 하고, 평가위원단 심사를 통과해야 하고, 층층시하의 결재를 거쳐야 한다. 공무원은 성과가 보장돼야 예산을 내준다. 정부 돈을 타려는 과학자는 결과가 분명한 실험만 하게 된다. 결과를 예상할 수 있는 연구라면 진정한 과학 연구가 아니다.

▶킬리 교수는 정부 지원에 목을 매는 전문 과학자보다 풍족한 상속 재산을 갖고 취미생활로 연구를 했던 '취미 과학자(hobby scientist)'들이 혁신적 성과를 거둔 예가 많다고 했다. 대기의 특성을 규명해냈던 캐번디시나 '종의 기원'을 쓴 다윈 같은 경우다. 아인슈타인도 취리히의 특허사무실에서 일하면서 쉬는 시간에 취미로 연구를 해서 상대성이론을 생각해냈다. 취미 과학자들은 단기 성과에 구애받지 않고 기발한 연구를 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2007년 기준 우리의 연구·개발 투자액은 31조3000억원으로 세계 7위였다. 그러나 작년까지 배출된 세계 27개국 528명의 과학노벨상 수상자 가운데 한국인은 한명도 없다. 한국 과학계가 단기간의 성과에 매달리는 추격형 연구에 집중해왔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많다. 한반도선진화재단 전문가들은 "연구·개발 지원은 씨 뿌리기로 이해해야 한다"고 했다. 당장 뭘 거두려고 하기보다는 지원해주고는 잊어버리는 '눈먼 돈' 같은 걸로 여겨야 한다는 것이다. 공무원들이 자기들 수준의 관점과 기준으로 간섭해선 창조적 원천기술이 나오기 힘들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