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이·여성전문기자

임신과 출산을 영어로는 재생산(reproduction)이라고도 말한다. 가족과 세대, 사회, 국가의 재생산 요소의 가장 원초적 요소가 인간이니, 꽤 적실한 표현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의 인간 재생산 능력은 세계 최저 수준이다. 합계출산율(가임여성이 평생 낳는 자녀 수)이 1.2명. 1+1=1.2라는 인구학적 오답을 놓고, 한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가 대책에 고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미래기획위원회가 엊그제 내놓은 5세 취학, 낙태 규제, 셋째 아이 대학 특례입학 같은 출산 장려 대책은 나오자마자 '비현실적' '탁상공론'이라는 십자포화를 받고 있다. 미래기획위원회의 저출산 대책은 세계 최악의 재생산 능력에 주목했을 뿐, 그 재생산과 관련된 주체들이 '출산 기계'나 '미래 인력' 아닌, 꿈과 희망과 성취와 좌절과 아픔과 회복에 웃고 우는 인간이라는 것을 간과한 것은 아닐까. 경제학자인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현재 만 6세인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만 5세로 낮추면 유아기 사교육비용이 줄고 노동 시장 진입 시기가 당겨지니 일석이조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 '대책'에는 다섯 살 아이의 발달 수준에 대한 이해와 그 아이들을 낳아 기르며 애태우는 부모의 마음이 빠져 있다. 또 정부가 지갑을 열어야 한다는 핵심 부분도 빼먹었다. 아이는 한 시간 일찍 가동해서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기계가 아니다.

인지 발달과 사회성 면에서 초등학교 1학년생과 유치원생의 차이는 약간 과장하면 하늘과 땅 차이다. 실제로 영국에서는 만 5세에 입학하고, 우리보다 한 학기 먼저 시작하니, 만 4세가 좀 넘어 학교에 가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1학년이 아니라, 일종의 예비단계인 R(Reception)학년으로 시작한다. 10여년 전, 영국 연수 때 아이를 R학년에 보냈다. 유치원과 비슷하게 둥근 책상 주변에 조그만 걸상을 둘러놓은 교실에서, 수업도 과목별 수업 진행이 아니라 인지 활동, 놀이, 휴식으로 이어졌다. 낮잠 시간까지 있었다.

영국이나 뉴질랜드의 5세 취학은 우리나라에서 대부분 사교육에 맡겨져 있는 유아 교육을 공교육으로 흡수한 것이다. 또 하나 우리와 다른 점은, R학년도, 저학년도 모두 오후 4시까지 학교에서 맡아준다는 점이다. 교육과 보육을 적절히 융합한 것이다. 이런 5세 입학제라면 사교육 부담이나 방과후 돌봄의 부담은 한결 덜어질 것이다. 그에 비해, 아이들을 한 해씩 끌어내려 학교에 입학시킨다는 발상은 재생산의 주체인 부모와 아이들을 미래 사회의 경제 도구로만 여기는 발상 아닌지 우려된다.

저출산의 원인이야 많겠지만, 대다수는 아이 낳아 키우며 먹고살기가 너무 힘들다는 이유를 댄다. 어린 자녀를 둔 젊은 부모는 경제적으로도 취약한 때다. 5세 취학이 직접적인 출산 장려책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자녀 양육 부담이 적은 환경을 만드는 근원적이고 장기적 처방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단, 이번에 불쑥 나온 '한 살 낮춰 입학하기'가 아니라, 현행 6-3-3-4제에 유아 교육 과정을 넣어 학제를 다시 짜고 방과후 돌봄의 문제를 해결해야 할 것이다. '인센티브'는 기업에서는 먹힐지 몰라도 출산과 양육에서는 아니다.

셋째 자녀에게 대학진학과 취업에서 특혜를 주겠다는 '인센티브' 아이디어는, 어쩔 수 없이 아이를 하나·둘만 갖게 된 가정엔 차라리 코미디다. 누군들 외동으로 태어나고 싶어서 외동으로 태어나겠는가.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조건으로 불이익이나 이익을 준다는 이런 수준의 발상이라면 저출산 대책을 논의할 자격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