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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말한 이가 규당(規堂) 안병찬이라면 나도 일찍부터 그 이름을 들은 어른이다. 내가 망명하던 해 홍주에서 대패하고 왜병과 일진회(一進會)에게 쫓긴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태도 안 돼 일본의 법정에 설 만한 변호사가 되었다니, 어째 이상하구나. 더구나 그분의 연세는 돌아가신 아버님보다 여러 해 위라 지금은 예순에 가까울 것이다. 그런데 수천 리 바다를 건너 나를 변호하러 오시겠다니, 고맙기는 하다만 왠지 영 미덥지가 않다."

안중근이 어렵게 안병찬의 호까지 기억해내며 그렇게 말했다. 정근이 대단찮은 일이라는 듯 받았다.

"동명이인일 수도 있겠지요. 어쨌든 변호사로서도 명망이 높은 분이라고 하니 형님께 크게 도움이 될 것입니다."

그때 무엇 때문인지 갑자기 비감에 젖은 안중근이 불쑥 말했다.

"만 번 죽기를 각오하고 나선 나로서는 변호사보다 내게 성사(聖事)를 베풀어줄 신부님이 더 간절하구나. 홍(洪:빌렘) 신부님께 말씀드려 이곳으로 모셔올 수는 없겠느냐?"

일러스트 김지혁

그러자 정근과 공근의 얼굴이 아울러 흐려졌다. 한참 뒤에 공근이 먼저 밝은 표정으로 돌아와 말했다.

"인편이 닿는 대로 청해보지요. 빌렘 신부라면 어떻게든 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안중근은 공근의 그와 같은 대꾸에 뭔가 석연찮은 느낌이 들어 물었다.

"어째 대답이 석연찮구나. 왜, 다른 신부님이라면 아니 된단 말이냐? 신부님이 내게 성사를 베푸는 걸 일본 사람들이 막기라도 하는 것이냐?"

그러자 이번에는 정근이 차분한 목소리로 받았다.

"일본 사람들이 아니라 우리 교회 스스로 눈치를 보는 것이지요. 처음 일본의 어떤 신문이 이등박문을 쏜 것이 천주교인이라고 밝히자, 일본에서 확인을 바라는 전보가 조선 교구에 왔습니다. 그때 뮈텔 주교는 '결코 아님'이란 답신을 보냈고, 며칠 뒤 '서울 프레스'가 다시 그렇게 보도하자 그곳으로 강경한 항의문까지 보냈습니다. 사고 당일 저녁 통감부로 가서 가장 먼저 조의를 표한 것도 뮈텔 주교였으며, 아흐레 뒤 이등박문의 장례식에는 성 바오로회 수녀들이 만든 커다란 조화(弔花) 화환을 앞세우고 참례하였지요.

안응칠이 바로 형님이고, 세례명이 토마라는 것이 밝혀진 뒤에는 얼마나 낙담하였던지, 일본에 있는 불란서 주교가 보다 못해 전보까지 쳐서 뮈텔 주교를 위로할 지경이었습니다. 형님은 이미 교회를 떠난 사람이고, 교회를 떠난 사람이 저지른 범행으로 교회를 비난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던가요.

우리 천주교가 발행하는 경향신문은 뮈텔 주교보다 한 술 더 떴습니다. '조선 교구 통신문'은 진작부터 형님의 거사를 상세하게 보도하였지만, 경향신문은 일이 있고 사흘 뒤에야 처음으로 보도하였는데, 그나마 형님에 관해서는 전혀 밝히지 않고 이등박문만 애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달 중순에는 '이등 공의 조난에 대하여 경고하노라'라는 사설을 내어 대놓고 형님의 의거를 살인죄로 단정하였습니다."

"어찌 그럴 수가 있는가. 무어라고 썼는지 읽어보았느냐……."

"저도 소문 듣고 그날 치를 찾아보았는데, 자못 준엄하였습니다. 이등 공이 참으로 우리를 사랑한 줄 알았으면 형님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라 하였고, 따라서 이등 공은 흉서(凶逝)를 당한 것이며, 매우 원통한 일이라 하였습니다. 또 '암살한 사람은 나라를 사랑함으로써 그리하였다 하며, 그 일을 하기 위하여 제 생명을 일정(一定) 바치기로 예비하였으니 그 마음이 영특하고 용맹하다 하나, 사람을 그렇게 죽이는 일은 악한 일인즉 (그 일도) 악한 일이라 하노라'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경향신문은 우리가 진남포를 떠날 때까지 형님이 천주교도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종교인이란 것조차 내비치지 않았습니다."

어지간해서는 낙담하여 주저앉는 법이 없는 안중근도 그 말을 듣자 어깨가 축 처지며 암울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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