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삼성과 포스코에 노조를 만들겠다. 사용자 편을 드는 유령노조·휴면노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 부술 것이다."

내년부터 복수노조 허용,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법 조항의 시행을 강행하겠다는 정부 방침에 맞서 '강경투쟁'을 선언한 한국노총 장석춘 위원장이 19일 본지 인터뷰에서 대(對)정부 압박의 강도를 한층 높였다.

서울 여의도공원 문화마당에 천막을 쳐놓고 11일째 농성을 벌이고 있는 장위원장은 이날 농성장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정부 방침대로) 내년에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한국노총의 조직력을 총동원해 노조 설립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1년 안에 한국노총 산하 노조수가 지금(5600여개)의 2배인 1만개로 늘어날 것"이라고 장담했다.

이같은 발언은 정부의 '복수노조 허용' 방침을, '복수노조 대량설립' 카드로 공격하겠다는 전략이다. 삼성과 포스코는 철저한 노무관리로 노조가 없거나(삼성) 사원의 노조 참여율이 낮은(포스코) 대표적 사업장들이다. 이들 글로벌 기업을 복수노조화의 최우선 타깃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합리적 노동운동’을 내세우며 민주노총과 차별화했던 한국노총도 결국 강경·거리투쟁에 나서게 될까. 전시(戰時) 상황실 같은 서울 여의도 천막 농성장에서 인터뷰에 응한 장석춘 위원장은“정부가 우리를 투쟁적 노동운동으로 내몰고 있다”고 했다.

장 위원장은 "'무노조 경영'의 삼성이나, 수십명의 조합원으로 구성된 친기업적 노조가 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는 포스코는 복수노조 허용 후 양 노총간 조직 확장 경쟁이 벌어질 대표적인 사업장"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이미 삼성·포스코에 노조를 신설하기 위한 전담반을 만들었다고 배석했던 관계자는 전했다.

장 위원장은 "초일류 기업들은 높은 임금과 복수노조 금지 조항을 무기로 노동자들의 의사를 반영하는 노조의 설립을 막아 왔다"며 "삼성·포스코 등에도 고용불안을 느끼는 직원들이 있고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이들도 제 목소리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노조가 없는 삼성이나 노조원 수십명의 '노사화합적' 노조가 있는 포스코는 한국노총뿐 아니라 민주노총에게도 타깃 사업장이 되고 있다. 재계에선 복수노조 허용시 이들 기업에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지원을 받는 노조들이 생겨나 노·노(勞勞) 갈등이 높아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장 위원장은 "초일류 기업도 더이상 (강성노조의) 무풍지대로 남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노총은 정부의 복수노조·전임자 방침에 맞서 '총파업'이란 배수진을 치고 있다.

―한국노총이 총파업을 감행해도 큰 파급력이 없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한국노총 산하 항운연맹은 전국의 모든 항구를 장악하고 있고 조합원이 3만명에 이른다. 이들이 파업을 하면 원자재를 수입에 의존하고 수출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는 산업 절반이 멈춘다고 보면 된다."

―총파업 시기는 언제로 잡고 있나?

"12월 중순으로 예정하고 있지만 현재 진행중인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 25일까지 합의가 되지 않으면 일정을 더 앞당길 것이다."

―복수노조·전임자 문제로 총파업을 벌이면 정치파업·불법파업 아닌가?

"정부는 당연히 불법파업으로 몰고 노총 지도부를 처벌하려 할 것이다. 이미 감옥에 갈 각오는 돼 있다. 그런 각오가 없다면 이 투쟁을 시작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양대 노총이 총파업을 공언하고 있지만 노사정 대타협의 가능성은 남아 있다. 노동계에선 정부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라는 원칙을 고수하면서도 기업규모에 따라 예외적으로 전임자 임금지급을 인정하는 타협안을 내놓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한국노총이 수용할 수 있는 타협안은 어느 정도 수준인가?

"1000명 이하 사업장에 전임자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 등이 정치권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노총은 전임자 임금지급 금지 조항을 폐지하는 안 외에는 절대 수용할 수 없다."

―전임자 임금금지를 반대하는 것은 노동계의 '밥그릇 지키기'란 비판도 있다.

"군사정권 하에서 조합비에 대한 제약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조합비 수준은 외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전임자 임금지급을 금지하면 현실적으로 노조보고 죽으라는 소리밖에 안 된다."

―노조 전임자가 없어도 조합활동은 가능한 것 아닌가.

"전임자는 노조만을 위해 일하는 게 아니다. 조합원과 사용자 간 의사소통을 원활히 하는 역할을 통해 기업의 생산성을 높여준다. 전임자 임금이 금지되고 복수노조가 허용되면 기업이 세우는 어용노조에 맞서 노동자를 대변하는 노조들은 더 전투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다."

장위원장은 "노사간 합의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면서도 "그러나 정부가 복수노조를 반대하는 기업의 숨통을 조여놓고 있어서 노사간에 어떠한 협의도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노사협의가 진행되지 않는 책임을 정부 쪽에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