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우(24)의 물리적 언어는 혀 끝에서 나왔다. 그녀의 말들은 뱃속에서 만들어지지 않았다. 어금니에 작은 사탕이라도 물고 있는 듯한 말투였다. 말을 할 때 그녀는 종종, 매운 것을 먹고 입맛을 다시는 것 같은 소리를 냈다. 그런 말투로 서우는 말했다. "저는 이제 막 박찬옥이라는 책을 한 권 뗀 느낌이에요. 제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칭찬을 받을 수는 없겠죠. 그렇지만 중간에 그만두지 않고 책을 다 뗐어요. 다음엔 어떤 책을 뗄 수 있을지 궁금해요."

'질투는 나의 힘' 이후 박찬옥(41) 감독이 7년 만에 내놓은 영화 '파주(28일 개봉)'에서 서우는 여주인공 은모를 연기했다. 26일 서울 광화문 한 카페에서 만난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제법 묵직한 속내를 말하곤 했다. 영화 속에서 은모는 중학생부터 스물 세살까지를 오간다. 그 사이 은모의 언니는 중식(이선균)과 결혼하지만 사고로 숨지고, 이후 은모는 형부인 중식의 곁을 모호하게 맴돈다. 그를 사랑하는지 아닌지 명확지 않다. 영화 속 안개만큼 뿌옇고 눅눅한 이 러브스토리에서, 서우는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했다. 영화 첫 장면과 마지막 장면 모두 서우의 얼굴 클로즈업인 것은 이 젊은 배우에 대한 감독의 신뢰를 입증한다.

"제가 생각해도 저희 영화는 좀 어려워요. 감정선을 따라가기 쉽지 않거든요. 단순히 형부와 처제의 불륜을 다룬 영화가 아니니까요. 제가 영화를 네 번 봤는데, 세 번째 봤을 때 비로소 영화를 제대로 만끽한 것 같았어요. 그래서 사람들한테 '세 번은 봐야 한다'고 말해요."

‘미쓰 홍당무’에서 자신의 길을 발견한 서우는‘파주’에서 그 길을 걷기 시작했다. 몇 년 전만 해도“배우는 다르게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는 그녀를, 사람들은 이제“좀 다르게 태어난 듯한 배우”라고 말한다.

수원과학대 방송연예과를 휴학 중인 서우는 2007년 장진 감독 영화 '아들'에서 단역으로 데뷔, 작년 개봉한 이경미 감독의 '미쓰 홍당무'에서 조연으로 나오면서 많은 사람들 눈에 띄었다. 세 번째 작품인 '파주'에서 주연 발탁은 아무래도 파격이다. 게다가 이 영화는 배우가 연출 의도를 얼마나 이해하고 받쳐주느냐가 관건이었을 작품이다.

"감독님이 정확한 디렉션을 주지는 않았어요. 영화 속 은모의 당시 상황만을 설명하셨죠. 대사도 별로 없고 감정들을 복합적으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 많았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저를 좋은 배우로 만들기 위한 감독님의 욕심이었던 것 같아요. 아, 이런 영화를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녀는 영화에서 중학생, 고등학생, 성인 역할을 각각 했어야 했다. "어린 역할은 여러번 해봐서 그리 부담스럽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데 이번엔 중학생이 어른으로 성장하는 모습을 단계적으로 보여줘야 했어요. 그게 가장 큰 숙제였어요. 성인이 돼서도 형부 곁을 떠나지 않는 은모가 어렸을 때는 어땠을까 생각하면서 연기했죠."

서우를 말할 때 영화 '미쓰 홍당무'를 빼놓을 수 없다. 그녀 역시 "'미쓰 홍당무'는 내가 태어나서 최선을 다해 본 첫 번째 일"이라고 했다. "제 인생이 그때 반전됐다고 할까요. 그 영화가 '미쓰 홍당무'가 아니었더라도 지금 제가 연기자의 길을 걷고 있을까, 생각하죠. 배우란 무엇인지 알게 해 준 영화이기도 해요."

그녀는 배우가 무엇인지 알고 있다는 말인가. "아직 배워가는 과정이긴 하지만 배우도 스태프 중의 한 명이란 걸 알게 됐어요. 물론 연기하는 스태프죠. 모든 스태프가 땀 흘려 일하는데 제가 열심히 하지 않으면 모두에게 폐를 끼치는 것이라는 사실을 그때 알았어요."

습, 하고 입맛 다시는 소리를 낸 서우는 느닷없이 "나는 원래 착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했다. "저는 원래 하고 싶은 말 다 하는 성격이거든요. 예나 지금이나 똑같아요. 그런데 요즘엔 '너 많이 컸다'는 식의 말을 들어요. 저는 아직 신인이고 칭찬보다 질책을 더 많이 받아야 하는데…벌써 사람들이 저에게 너무 잘할 것을 기대하는 것 같아서 좀 버거워요."

서우는 화장대에 '변하지 말자'라고 써붙여놓고 거울 볼 때마다 한번씩 읽어본다고 했다. 변하지 않고 싶은 게 뭔지 묻지는 않았다. 다만 '파주'에서 호연한 그녀가 변함없이 좋은 연기를 보여주리라는 예감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