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11대 대통령 없어요?”

지난 18일 휴일을 맞아 광화문광장을 찾은 권모(24)씨는 대학원 동료 에이든(Aidanㆍ가명)의 질문에 당황했다. ‘역사물길’을 구경하던 그가 연도별로 한국 역사를 기록한 바닥돌들에 제11대 대통령 취임이 없는 이유를 물어왔기 때문이다.

5~9대 대통령을 지낸 박정희 대통령의 8~9대 취임 사실도 적혀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한 권씨는 “중임(重任)한 대통령은 한 번만 쓴 것 같다”고 설명했으나 에이든은 곧 “이승만은 1, 2, 3대 모두 적혀 있다”며 바닥돌을 가리켰다.“언뜻 박 대통령의 8~9대는 유신(維新)과 관련됐고, 전 대통령의 11대는 12ㆍ12, 5ㆍ18과 관련돼 정통성 문제 때문인가 싶었다”는 권씨는 “하지만 외국인에게 설명해 주기도 어렵고, 서울시의 정확한 의도를 몰라 그냥 얼버무렸다”고 말했다.

1980년 11대 전두환 대통령의 취임이 빠진 광화문광장의 역사물길. 1972년과 78년의 박정희 대통령의 8, 9대 취임도 누락됐다.

지난 8월1일 문을 연 광화문광장의 양쪽에는 수심 2cm의 ‘역사물길’이 조성됐다. 동쪽 역사물길에는 조선이 건국된 1392년부터 현재까지 617년 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이 617개의 바닥돌에 기록됐다. 돌 하나에 한 해 동안 일어난 일을 적어 해마다 0~4개의 주요 사건이 쓰여있다.

문제는 해방이후 주요 대통령의 취임 가운데 박정희 대통령의 8대(1972년), 9대(1978년)와 전두환 대통령의 11대(1980년)만 빠졌다는 것이다. 초대부터 현 이명박 대통령까지의 취임이 모두 포함됐고, 대통령을 세 차례 역임한 이승만 대통령의 초대(1948년), 2대(1952년), 3대(1956) 취임도 각각 기록됐기 때문에 8, 9, 11대 대통령의 취임만 누락된 이유를 짐작하기 어렵다.

광화문광장의 관리를 맡고 있는 서울시설관리공단의 담당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광화문광장의 조성을 맡았던 서울 도시기반시설본부 관계자는 조선닷컴과의 통화에서 “(역사물길에) 빠진 대통령은 없다”고 하다가 “8, 9대 박정희, 11대 전두환이 빠졌다”고 집어서 지적하자 “중복된 대통령은 뺀 것”이라고 다시 말했다. 이 관계자는 “그렇다면 왜 이승만 대통령은 1~3대 취임이 세번 모두 기록됐느냐”는 질문에 “자문위원회에서 결정한 것이라 자료를 찾아봐야 한다”며 “현대사를 전공한 교수 등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들이 (8, 9, 11대는) 합당한 이유가 있으니까 제외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역사물길은 개장 초반 이미 ‘오타 논란’을 한번 겪었다. 1907년의 바닥돌에 ‘국채(國債)보상운동’을 ‘국체보상운동’이라고 새겼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라고 밝힌 한 네티즌은 광장 개장 이틀 후인 8월 3일 한 포털에 이 바닥돌 사진을 찍어 올리면서 “중요한 역사 시설물을 설치하며 몇 번이나 검토했을 텐데 실망스럽다”고 지적했다. 이 사건 역시 광화문광장 관계자들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

광화문 사거리에 위치한 외국계 회사에서 일하는 나모(32)씨는 “가끔 외국인 임직원들이 광화문광장에 가서 역사물길에 적힌 사건들을 설명해 달라고 한다”며 “외국인들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접하는 한국 역사일 수 있으므로 정확하면서도 가치중립적으로 정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