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1일자 A25면 '제국의 황혼' 24에서 콜레라와 관련한 내용 중 제목은 '호열자(虎列刺)'로 되어 있고, 고종 때 펴낸 사진 속의 책('虎列剌病預防注意書')에는 '호열랄(虎列剌)'로 되어 있다. 어느 것이 맞는 것인가.

― 대구시 남구 독자 최재구씨

A: 조선 말기 '랄(剌)'자를 자(刺)로 잘못 읽어 '호열자'로 굳어져

지해범 전문기자

콜레라(cholera)는 고종 16년인 1879년경 일본으로부터 한국에 처음 전염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고종시대사' 2집에 따르면 '고종 16년 6월 20일 앞서 진질(疹疾)이 일본국으로부터 부산에 전파되다. 동래부사 윤치화가 부산 주재의 일본국관 전전헌길(前田獻吉)의 청에 따라 절영도에다 소독소피병원(消毒所避病院)의 설립을 허가하다'란 대목이 나옵니다.

일본에서는 1822년경 동남아에서 유행하던 콜레라가 일본에 처음 상륙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어 1858년 여름부터 콜레라가 대유행하여 전국에서 수십만명이 사망합니다. 당시 일본인들은 환자가 "코로리, 코로리" 하며 죽는다고 하여 소리를 따서 '코로리(コロリ)'라 부르다가 네덜란드에서 온 상인으로부터 '콜레라'란 병명을 듣고 '호열랄(虎列剌)'로 적고 '코레라'로 읽었습니다. 1880년 간행된 콜레라 예방서적('虎列剌豫防諭解')'이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일본인들은 또 '호열납(虎列拉)'이란 용어도 사용했습니다. 1887년 7월 27일자 아사히신문은 '대화국(大和國) 갈본촌(葛本村)에서 호열납(虎列拉)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중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심한 설사 구토병을 '곽란(藿亂)'이라 부르다가 19세기 일본으로부터 '호열랄'과 '호열납'이 전해지자 두 용어를 혼용했습니다. 둘 다 중국어 발음으로 '후리에라'여서 원음과 가깝습니다. 요즘에는 '호열납'을 주로 사용합니다.

1903년 펴낸 '예방주의서'

조선에서는 1895년 콜레라가 크게 유행하여, 그해 6월 26일 관보는 '한성남문 내 호열랄(虎列剌) 사망자가 52인이다'고 보고했습니다. 그해 조선은 '호열랄병예방규칙'을 발표하고 1903년 '예방주의서'를 펴냅니다. 이때 민간에서는 '호역(虎疫)' '호환(虎患)'이라고도 했는데, '호랑이처럼 무서운 병'이란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다가 1902년경 '호열랄'과 '호열자'가 혼용되기 시작합니다.

그해 황성신문 7월 24일자는 '호열랄예방법'을, 8월 26일자는 '虎列刺(호열자)의 蔓延(만연)'이란 기사를 싣습니다. '예방법' 기사에서 '虎列剌난 일종의 괴질이니…'라고 하여 '호열랄'로 적고 '호열자'로 읽었을 수도 있습니다. 이는 비슷한 두 글자(剌, 刺)를 혼동한 사람들이 '호열자'로 오독(誤讀)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정됩니다. 1909년 미국 교포신문 신한국보(10.26.)는 아예 한글로 '한국에 호열자 창궐'이란 기사를 싣습니다. 그후 '호열자'가 굳어지고 '호열랄'은 죽은 어휘가 됩니다. 본지는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용어를 기사 제목으로 채택했습니다. '호열랄'이 '호열자'가 된 과정에는 '일본'이란 창을 통해 서구 문물을 받아들였던 우리의 굴절된 역사와 또한 그마저도 정확히 수용하지 못한 당시 사회의 느슨함이 녹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