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전(法典)을 즐겨 읽는 작가 김훈은 신작 소설《공무도하》에서 법조문을 자주 인용한 것에 대해“법의 형식만 남고 내용은 소멸되는 현실에서 법의 공허함을 쓰려고 했다”고 말했다.

"현실의 다양한 편린(片鱗)을 몽타주한 소설이다. 앞으로 나아가고자 하면서도 나아가지 못하고 같은 자리에서 거듭 넘어지는 우리 사회의 꼴에 대한 답답한 느낌을 그려봤다."

역사소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이 우리 시대의 희망과 절망을 노래한 신작 장편소설 《공무도하(公無渡河)》(문학동네)를 펴냈다.

일간지 사회부 사건기자와 그 주변 인물들을 등장시킨 이 소설은 '해망(海望)'이라는 허구의 지명을 주무대로 삼아 오늘날 한국 사회를 총체적으로 반영했다. 서해안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곳'을 뜻하는 해망은 피안(彼岸)을 바라보는 차안(此岸)을 상징하면서, 새만금 간척·매향리 미군폭격훈련장·미군 장갑차 사건·다문화가정 등 우리 시대의 다양한 쟁점들을 응축시킨 공간이다.

'님아 강을 건너지 말랬어도 기어이 건너려다 빠져 죽으니 어찌하랴 님을 어찌하랴'는 고조선 시가 〈공무도하가(公無渡河歌)〉를 가리켜 "강 건너 피안의 세계로 가자는 것이 아니라 약육강식의 더러운 세상을 함께 살자는 노래"라는 작가의 독특한 해석 속에 소설 《공무도하》의 주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 소설의 주조음을 이루는 문장은 '인간은 비루하고, 인간은 치사하고, 인간은 던적스럽다. 이것이 인간의 당면문제다. 시급한 현안문제다'라는 것이다. 생존이 윤리에 우선하는 당대 현실을 묘사하는 작가의 문체는 사실 전달을 우선하는 신문의 스트레이트 기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공장 5층 옥상에서 보름째 천막을 치고 농성하던 생산직 노동자 한 명이 추락사했다. (중략) 시멘트 바닥에 부딪혀 몸이 깨어질 때, 연마공은 토사물을 쏟아냈다. 삭은 라면과 위액에서 진한 술 냄새가 났다고 목격자는 진술했다.'

이어서 이 소설은 한 노동자의 죽음을 놓고 '취중의 실족사'로 보는 경찰보고서와 '악덕기업의 만행에 죽음으로 항거한 노동열사'라는 노학(勞學)연대의 주장을 사실적으로 충돌시킨다. 작가는 "일부러 간결하고도 강력한 스트레이트 문장을 썼다"며 "스트레이트 문장의 아름다움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문장의 질서 속에 숨어 있지만 독자는 그것을 감지할 수 있지 않겠는가"라고 말했다.

그러나 소설 속의 신문기자는 '신문에 쓸 수 없는 것들, 써지지 않는 것들, 말로써 전할 수 없고, 그물로 건질 수 없고, 육하(六何)의 틀에 가두어지지 않는 세상의 바닥'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한다.

동시에 김훈의 분신이라고 할 그 신문기자의 애인은 모든 인문주의자의 꿈을 담은 '김훈의 문장론'을 대변한다. '그의 글은 증명할 수 없는 것을 증명하려고 떼를 쓰지 않았으며 논리와 사실이 부딪칠 때 논리를 양보하는 자의 너그러움이 있었고, 미리 설정된 사유의 틀 안에 세상을 강제로 편입시키지 않았고, 그 틀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 세상의 무질서를 잘라서 내버리지 않았으며, 가깝고 작은 것들 속에서 멀고 큰 것을 읽어내는 자의 투시력이 있었다.'

작가 김훈은 '인간이 겪은 시간 전체를 살아가는 생활인'의 전형으로 《삼국유사》를 남긴 일연(一然)을 제시하면서 '일연은 부서질 수 없고 불에 탈 수 없는 것들에 관해 썼다. 이것이 당대의 야만에 맞서는 그의 싸움이었다'고 규정했다.

김훈은 작가 후기에서 '나는 나와 이 세계 사이에 얽힌 모든 관계를 혐오한다'고 직설적으로 말했다. 그러나 "거친 자의식을 쏟아낸 것을 지금 후회하고 있다"며 "사실은 강 건너로 가지 못하는 고통을 그린 것"이라고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