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 국회 법제사법위의 서울고등법원 국정감사에서 이태운 법원장이‘나영이사건’범 인에 대한 선고 형량이 낮았다는 의원들의 비판이 이어지는 와중에 얼굴을 만지고 있 다.

대법원이 성범죄자의 처벌 수위를 높이겠다며 지난 7월부터 '성범죄 양형 기준안'을 시행했지만 그 뒤에도 일선 법원에선 성범죄자의 절반 정도를 집행유예로 풀어주고, 10명 중 9명꼴로 형(刑)을 깎아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법원이 성범죄자에게 지나치게 관대한 판결을 내려 애써 마련한 양형 기준이 유명무실하게 운영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한나라당 박민식 의원이 지난 7월~9월 말 서울고등법원 산하의 10개 1심 법원이 선고한 성범죄(강간·강간추행 등) 판결 95건을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이중 50건(52.4%)에서 집행유예가 선고됐다.

집행유예로 풀려난 사례를 보면 법원의 성범죄 처벌 수위가 국민의 법 감정과 괴리돼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서울동부지법은 22세 여성을 흉기로 위협해 강간하고 또 다른 여성을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된 이모씨에게 "반성하고 있고 피해자와 합의한 점을 참작한다"며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은 길가는 여성을 위협해 목을 흉기로 긋고 강간하려다 미수에 그친 김모씨에게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특히 김씨는 술에 취해 판단력이 떨어진 '심신 미약' 상태였던 점이 참작됐다.

법원은 성범죄자 10명 중 9명꼴로 여러 감경 사유를 들어 형량을 깎아줬는데, 김씨처럼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을 이유로 형을 감경받은 사례는 95건 중 18건(18.9%)이었다.

또 양형 기준 적용을 받지 않는 미수범(未遂犯)사건(10건)을 제외한 나머지 85건 중 74%(63건)는 양형 기준의 최저 범위인 '감경 범위'에서 형이 선고된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강간죄는 '감경(1년6월~3년), 기본(2년6월~4년6월), 가중(3년~6년)' 범위 내에서 형을 선고하도록 기준이 정해져 있다. 특히 85건 가운데 아예 기준안을 벗어나 감경 범위보다 더 낮은 형을 선고한 경우가 12건(14%)이나 됐고, 기본 범위와 가중 범위에서 형을 선고한 경우는 각각 6건(7%), 4건(4.7%)에 불과했다. 양형 기준은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판사들이 형량을 정할 때 존중해야 하고, 이 기준에서 벗어난 판결을 할 때는 판결문에 이유를 적도록 법원조직법에 규정돼 있다. 박민식 의원은 "법원이 이런 식으로 선고할 거면 왜 양형 기준을 마련했는지 의문"이라며 "양형위원회에 쏟아부은 예산과 시간이 아깝다"고 말했다.

[그늘에 가려졌던 성폭력, 과연 맞설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