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바오 중국 총리가 4일 사흘 일정으로 북한을 방문했다. 김정일 위원장은 평양공항에서 원자바오 총리를 영접했다. 중국 총리의 방북은 대외적으로는 양국 수교 60주년 행사를 위한 것이지만 실제로는 김정일·원자바오 회담을 통해 북핵 문제에 대한 하나의 전환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북·중 사이 움직임을 둘러싸고 김정일의 '중대발표설'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후진타오 주석의 특사로 방북했던 다이빙궈 외교담당 국무위원에게 북핵 '다자회담'에 참여할 뜻을 밝혔었다. 따라서 이번 원자바오 총리와의 회담에선 일단 김 위원장이 참여하겠다는 '다자회담'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윤곽이 드러날 가능성이 높다.

김 위원장이 북핵 6자회담 복귀가 아니라 굳이 다자회담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을 보면 북한은 어떤 형태로든 6자회담의 틀에 대한 변경을 시도하고 있는 듯하다. 일각에선 김 위원장이 미·북·중 3국 협상을 제안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실제 회담은 미·북이 하고 우리를 포함한 다른 4개국은 참관인처럼 되는 방식에 대한 추측도 나오고 있다. 어떤 것이든 G20 정상회의까지 개최하는 대한민국이 우리 운명이 걸린 북핵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중국은 그동안 변함없이 6자회담을 지지해왔다. 지금의 한반도와 국제정세에서는 6자회담이 그나마 최선의 방안이라는 데 거의 이견이 없다. 원자바오 총리의 방북은 북한의 6자회담 복귀로 이어져야 한다.

만약 김 위원장이 추상적이나마 한반도 비핵화 뜻을 밝히고 6자회담으로 돌아온다면 북핵 협상은 전기(轉機)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전기는 그동안에도 한두 번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 전기들이 북핵 폐기가 아니라 북한의 시간끌기만 도와준 것도 사실이다. 북한이 6자회담으로 돌아온다 해도 북한이 핵을 폐기하는 결단을 내릴 것인지에 대한 전망은 여전히 어둡다. 북한은 최근 한·미가 제안한 북핵 일괄타결론을 일단 거부하고 나왔다. 또다시 지루한 협상이 시작될 것이라는 예고처럼 들린다. 여기서 다시 기약없는 협상이 이어진다는 것은 북핵 폐기가 사실상 물 건너갈 위험에 빠지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의 북핵 문제는 중국의 문제라 불러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만약 중국이 북핵 불용(不容)을 최우선 원칙으로 세우고 북한에 단호하게 대처했다면 북핵이라는 악몽은 생겨나지도 않았을지 모른다. 중국은 북핵에 반대한다면서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북한에 대규모 원조를 제공해 북 체제의 숨통을 터줘왔다. 이번에도 원자바오 총리는 북한에 대규모 원조 보따리를 들고 갔다고 한다. 북한이 그 보답으로 6자회담에 나오는 것이라면 핵 폐기 의지는 없이 그저 상황만 모면하는 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원자바오 총리가 이번 회담에서 김 위원장에게 "북핵 폐기 외에 길이 없다"는 경고를 분명히 하지 않으면 중국의 본심이 무엇인지에 대한 국제사회의 의구심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의 본심에 따라 최대 피해국인 우리와 다른 주변국들의 대응도 완전히 달라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