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살 여자어린이를 성폭행해 평생 장애를 안고 살아가게 만든 피의자에게 12년형의 징역형이 내려진 사실이 알려지자 일반 시민들의 분노가 확산되고 있다. 흉악한 범죄에 비해 형벌이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청와대 홈페이지 게시판과 조선닷컴을 비롯한 각종 인터넷 사이트에는 "딸 가진 부모로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재수사를 해서 아동 성폭행범은 법정최고형으로 다스려달라"는 등의 글이 잇달아 올라오고 있다. 인터넷에는 피의자의 실명 등 신상 정보가 나돌고 있어 피의자 인권침해 논란도 일고 있다.

지난해 말 발생했던 '나영이(가명) 사건'은 경기도 안산에서 조모(57)씨가 만취 상태에서 등교 중이던 여자 어린이(당시 8세)를 인근 화장실로 끌고 가 목 졸라 기절시키고 성폭행한 사건이다. 피해 어린이는 이 사건으로 인해 항문과 소장, 대장 등이 심하게 파열돼 평생 인공항문에 의존하고 살아가야 하는 장애인이 됐다.

범행을 저지른 조씨는 최근 대법원 상고심에서 징역 12년형이 최종 확정됐다. 조씨는 1심과 2심에서도 동일한 형을 선고받고 항소했었다.

지난 22일 KBS가 '전자발찌 1년, 우리 아이는 안전한가'란 프로그램에서 나영이 사건을 재조명하자 시민들은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그 정도 처벌에 그친다면 제2, 제3의 나영이가 또 나올 것"이라며 처벌을 강화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다.

박모씨는 지난 29일 청와대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 '엎드려 읍소합니다'란 글을 올려 많은 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박씨는 이 글에서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어린 나영이를 병원에서 봤다"고 적었다. 박씨는 "쏟아져 내린 장은 젖은 거즈로 덮여 있었고 가녀린 아이의 목엔 선명한 보라빛 손자국, 얼굴은 퉁퉁 부어서 온통 멍 투성이에 실핏줄이 모두 터져 눈의 흰자위가 보이지 않았다"면서 "그 참혹함을 생각하니 가슴이 터져버릴 것만 같다"고 심경을 밝혔다.

박씨는 "저런 흉악범에게 고작 12년형밖에 주지 않는 대한민국이 억울하고, 우리 아이들을 성폭력범에게 관대한 대한민국에 태어나게 한 것이 억울하다"며 범인에게 더욱 엄한 벌을 내려줄 것을 호소했다.

이 글은 청와대 게시판에서만 1만 7000여명이 조회했고, 인터넷 블로그와 카페 등으로 급속히 퍼지는 중이다. 이른바 '나영이 어머니 글'로 알려진 이 글은 나영이 어머니가 쓴 것이 아니라 제3자가 쓴 글로 밝혀졌다. 청와대 홈페이지는 2000여건의 관련 글이 올라오는 등 접속자가 폭주해 이날 오후 7시 현재 접속이 원활하지 않은 상태다.


인터넷에는 범인을 법정최고형으로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주부 채모씨는 "나도 딸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나영이 가족이 너무 안 됐고 억울하다"면서 "대한민국에서 딸 가진 부모가 아무 걱정없이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어주세요"라고 청와대에 촉구했다.

시민들은 조씨에게 더 큰 벌을 내려달라거나 성범죄 관련법을 개정하라는 요지의 인터넷 청원 운동을 펼치고 있다.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에 개설된 '아동 성폭행은 살인행위! 법정최고형+피해보상까지 하라'란 청원란에는 30일 오후 7시까지 31만여명이 서명했다.

여성부 홈페이지에도 분노한 네티즌들의 접속이 폭주하면서 온종일 회선이 원활하지 않았다. 여성부 관계자는 "하루 평균 2300여명이 접속하는데 어제와 오늘 수십만 명이 홈페이지에 몰려 접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 관계자는 "참담한 사건이다. 피해 정도나 가해자의 반성 없음에 비춰봤을 때 처벌 결과가 불합리하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미 나온 판결을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향후 한국 사회가 성폭력 범죄에 대해 더욱 엄격한 기준을 가져야 할 것"이라고 촉구했다.

일부 인터넷에서는 범인 조씨의 실명을 거론한 게시물이 올라오는 등 범인의 신상정보가 급속히 퍼져 나가 또 다른 논란을 낳고 있다. 네티즌들은 "얼굴까지 공개해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격리시켜야 한다"며 실명 공개에 찬성하지만 다른 쪽에서는 "아무리 흉악범이긴 해도 피의자 인권이 침해당하고 사건의 본질이 호도될 우려가 있다"는 의견을 보였다. 조씨의 신상은 법원 판결에 따라 거주지 관할 경찰서 내 전산망을 통해 향후 5년간 조회할 수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더라도 법에 따른 처벌이 아닌 사적인 형벌을 가해서는 안 된다"며 "범죄자에 대해 '마녀사냥'을 당했다는 동정여론을 불러일으켜 사건의 본질을 흐릴 수도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않다"고 자제를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