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9년 8월 30일 마침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가 제때 뜨지 않아 6개월이나 마음 졸이며 기다린 후였다. 여의도비행장에서 비행기에 오를 땐 대한민국 모든 이들이 우리를 부러워하는 듯했다."(심종섭 박사)

정부수립 해인 1948년 가을, 문교부(현 교육과학기술부)는 대한민국 최초 국비유학생 모집 공고를 발표했다. 나라를 이끌어갈 일꾼을 양성하기 위해서였다. 영어·한국사 등 필기시험과 면접을 통해 최종 35명이 뽑혔다. 이들 국비유학 1호생들은 이듬해인 1949년 자신이 입학할 미국 대학 학사 일정에 따라 차례로 출국했고, 임학자인 심종섭 박사(예일대)를 비롯, 고(故) 김옥준 전 연세대 교수(콜로라도광업대학), 고 이한빈 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하버드대) 등 6명이 1949년 8월 30일 마지막으로 미국으로 떠났다. 이들 최초 국비 유학생들은 정부로부터 2년간 장학금을 받았다.

대한민국 최초 국비유학생중 한 명인 고 이한빈의 하버드 경영대학원 시절의 모습.

이후 1958년 이승만 정부는 국비유학생 제도를 부활시켜 연간 50명 한도로 뽑겠다고 발표하고 예산을 책정하기도 했지만, 1960년 4·19 혁명이 일어나면서 중단됐다.

지금의 '국비유학생 제도'가 신설된 것은 1977년이다. 정부는 외국의 선진 학문을 배워 조국 발전에 이바지하라는 취지에서 제도를 도입했다.

첫해 미국 10명, 독일 1명, 케냐 1명 등 12명이 선발됐다. 이 중엔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도 있었다. 대학 시절 장학금을 받지 못해 유학이 좌절됐던 진 전 장관은 국비유학생 제도 덕분에 1977년 9월부터 1980년 8월까지 미국 스탠퍼드대를 다녔다. 이 밖에도 김대환 전 노동부 장관(1979년·영국 옥스퍼드대), 송지용 전 LG생명과학 기술연구원 상임고문(1979년·미 코넬대), 박진 한나라당 국회의원(1983년·옥스퍼드대) 등도 국비유학생 제도가 배출한 인재들이다.

국비유학생 제도 도입 후 선발 인원은 점차 늘어났다. 1980년대 후반엔 120명까지 뽑았다. 이후 90년대 들어 수가 점차 줄어 최근엔 매년 30~40여명을 뽑고 있다. 올해 상반기 선발된 21명을 포함해, 지금까지 총 1980명이 국비유학생으로 선발되어 47개국에 파견됐다.

미국은 선발국 중 단연 1위다. 71%인 1406명이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영국(118명), 일본(58명), 독일(45명), 러시아(41명) 등이 뒤를 이었다. 미국·캐나다·영국은 2년간 장학금을 지급하고 나머지 국가는 3년간 지급한다. 현재 하반기 선발 절차가 진행 중이다.

[특집] 대한민국 제1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