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처음으로 밤새워 공부 중입니다."

올 입시에서 입학사정관 전형으로 카이스트(KAIST)에 합격한 조민홍(부산 대진정보통신고 3년)군은 27일 카이스트 영빈관에서 열린 '브리지(bridge) 프로그램' 간담회에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브리지 프로그램은 교과 성적 아닌 재능을 인정받아 뽑힌 합격생에게 대학 강의를 쫓아갈 수 있도록 카이스트가 시작한 일종의 '보충수업'이다.

전문고(옛 실업계) 출신으로, 초등학교 때부터 40여개의 로봇을 제작한 재능을 인정받아 합격한 조군은 수학·물리·화학 등을 영어 강의로 배우느라 정신이 없다. 일주일에 세 번씩 이어지는 강의 진도를 따라가야 하고, 쪽지시험에다 과제물 부담도 만만찮다.

지난 8월, 성적보다 잠재력을 따진 입학사정관제로 전국에서 150명을 선발한 카이스트는 이달 초 국내 대학 최초로 예비 입학생을 위한 브리지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비(非)과학고 출신 합격자의 학습 수준을 과학고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이광형 교무처장은 "일반고 출신 합격생 중 상당수는 입학 후 곧장 카이스트의 수학 및 과학 교과 수준을 따라잡기 힘들어 마련한 것"이라고 말했다.

올해 입학사정관전형으로 카이스트에 합격한 학생들이 27일 카이스트 영빈관에서 열린 ‘브리지 프로그램 간담회’에 참석해 서남표 총장(맨 왼쪽),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가운데)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학생들은 이날 입학사정관 전형을 치르며 겪은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브리지 프로그램은 대학측이 영어로 진행되는 수학·물리·화학 등 3과목의 동영상을 홈페이지에 올리면 예비 신입생들이 신청해 듣는 시스템이다. 이수 학점은 입학 후 정식 학점으로도 인정해 준다. 중간·기말고사는 주말을 이용해 카이스트에 직접 와서 치르게 된다.

이날은 브리지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예비 입학생 34명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 서남표 총장과 이주호 교육과학기술부 차관, 카이스트 입학사정관 6명 등에게 '입학사정관제 1세대'로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민준희(서울 한가람고)="사교육의 '핵'이라는 서울 목동에서 왔다(웃음). 요즘 주변에 보니 입학사정관 전문학원도 생겼더라. 하지만 절대 필요 없다고 본다. 가슴에 별(꿈)이 있다면, 그걸 조금만 보여주면 (입학사정관 전형에) 합격할 수 있다. 그런데 일부 대학은 능력을 보는 게 아니라 여전히 숫자(성적)를 보는 것 같다."

▲최종수(전주 우석고)="입시가 진화한다고 하지만 사교육도 진화하지 않는가. 최근 입학사정관 강연회가 있어 가봤다. 서울에선 입학사정관 대비 프로그램이 일년에 700만원이라고 하더라. 과연 입학사정관제가 사교육을 이길 수 있을까 걱정이 된다."

▲이도유(통영고)="학원도 없는 지역에서 공부한 나를 뽑아준 것 고맙다. 카이스트엔 아마 고교 선배도 없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자신 있다. 브리지 프로그램을 통해 앞으로 다가올 대학생활의 가이드라인을 볼 수 있어 아주 유익하다."

▲김주완(목포고)="입학사정관이 학교를 찾아와 나와 50분 동안 인터뷰를 했다. 공부 얘기를 많이 물어볼 줄 알았는데, 나의 꿈이 뭔지, 그 꿈을 위해 뭘 했는지. 앞으로 뭘 하고 싶은지 더 많이 질문하더라."

간담회 도중 이윤석(천안 쌍용고)군이 "카이스트는 과외 안 받는 인재를 뽑겠다고 하지만 카이스트 대학생 중엔 과외 아르바이트하는 학생도 많다더라"고 예리한 질문을 던졌다. 서남표 총장은 웃으면서 즉답을 피한 채 "나는 여러분이 다른 대학이 하지 않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길 바랍니다"라고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