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한국인의 '국민음료'로 자리 잡은 건 커피믹스 덕분이다. 커피는 개화기 한국에 처음 들어왔다. 6·25 이후 미군부대에서 인스턴트 커피가 밀거래로 흘러나왔으나, 이때까지도 커피는 손님 접대용으로 쓰일 만큼 흔하지 않았다.

그러다 1970년 동서식품이 인스턴트 커피 '맥스웰하우스'를 출시한다. 커피는 순식간에 '전 국민의 음료'가 된다. 수정과나 식혜, 보리차, 옥수수차, 생강차 등 전통 음료가 있기는 했지만, 커피처럼 확실하게 디저트나 접대용 음료로 자리를 차지한 음료는 없었다. 1976년 동서식품이 세계 최초로 커피·설탕·크림을 소비자의 입맛을 표준화해 배합 포장한 커피믹스를 개발해 판매를 시작한다. 90년대 네슬레 등 후발주자도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 '다방 커피'를 너무 애용할 경우 심혈관계 질환이 늘어날 수 있다고 의사들은 경고하지만, '후다닥' 하는 순간에 커피 한 잔을 마실 수 있는 편리함을 사람들은 쉽게 버리지 않았다.

커피믹스의 미덕은 '쉽고 빠르게'. 스타벅스 등 우월한 커피 맛과 세련된 문화를 앞세운 테이크아웃 커피점이 2000년대 들어 급속히 확산됐지만, 국내외산 인스턴트 커피가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약 90%를 지키고 있다.

'맛'보다 '속도'가 더 중요한 건, 다른 음식에도 적용된다. 인스턴트 라면도 마찬가지. 인스턴트 라면이 한국에 소개된 건 1963년 삼양라면이 '치킨라면'을 출시하면서다. 이후 1998년 단일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1조원 시장을 열었고, 2005년 1인당 소비량 70개로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중국에서 들어온 자장면이 태극기, 무궁화, 김치, 비빔밥과 함께 '한국 100대 민족 문화 상징'(2006년 문화관광부 발표)으로 선정될 정도로 '한국으로의 귀화'에 성공한 것도 속도 덕분이다. 자장면 한 그릇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3분. 만들고 3분이 지나면 면이 불어 맛이 떨어지니 빨리 먹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전화 내려놓으면 현관문 두드리는 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로 빠르게 배달되니 이동시간까지 절약된다.

양세욱 한양대 중어중문학과 연구교수는 자신의 책 '짜장면뎐(傳)'에서 자장면을 '산업화의 전투식량'이라고 규정했다. "1960년부터 1992년까지 대한민국은 퇴역한 예비역 장성들이 바통을 이어가며 통치한 병영이었다. 국민들은 대한민국을 산업화시킬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태어난 산업전사였다." 후다닥 한끼 때우고 공장, 사무실 등 산업 '전장(戰場)'에 복귀하기엔 자장면만 한 음식도 없다는 것이다.

산업화의 전투식량이라는 표현, 커피믹스와 인스턴트 라면에도 고스란히 적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