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는 루게릭 병 환자를 연기한 김명민이 알몸으로 체중계에 오르는 장면이 나온다. 두 사람이 그를 들어 올려 침대 모양 저울에 누일 때, 체중계 창에 51.6㎏이란 숫자가 뜬다. 컴퓨터그래픽이 아니라 실제 그의 몸무게였다. 불길하게 빨간색으로 반짝이는 그 숫자 위에 그가 꼼짝 않고 엎드려 있다. 대기근(大飢饉)이나 빙하기에 맞닥뜨려 멸종을 앞둔 짐승이 그런 모습일까. 등 위로 솟구친 그의 갈비뼈는 외면하고플 만큼 앙상하다.

서른일곱 살의 이 배우는 "이제 많이 회복돼서" 61㎏가량 된다고 한다. 완전한 회복은 72~73㎏이다. 그를 22일 오전 서울 논현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자연스레 문병 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근심 어린 표정과 조심스러운 말투를 짐짓 준비했다.

마주 앉은 김명민은 아직도 볼이 많이 패어 있었다. 그의 키 180㎝를 지탱하고 있는 두 다리는 여자 패션모델의 그것처럼 불안하게 가늘었다. 목소리만큼은 쾌활하고 밝았다. 그는 사진 찍을 때도 "밝은 데서 찍을까요? 우리 영화는 좀 화사할 필요가 있어서"라며 카페 밖으로 나서기도 했다.

김명민은 자기 몸을 극한상태로 몰아넣으며 영화를 찍었다. 그는“촬영할 때는 하루하루가 고통스러웠는데 크랭크업을 앞두고는‘이 몸으로 뭘 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에 서운했다”고 말했다.

―대체 어떻게 20㎏ 이상 줄인 건가요.

"야채하고 두부만 먹었어요. 그래도 안 빠지면 굶었죠. 물만 마시고. 2월 10일에 촬영 시작했으니까, 2월 9일에 마지막으로 밥 먹고 5월 25일까지 일절 곡기를 끊었습니다."

―운동으로 뺄 수는 없었습니까.

"루게릭 병은 근육이 없는 병이잖아요. 운동을 하면 살이 빠지면서 근육이 생기니까 그럴 수 없었죠."

그러므로 '김명민 다이어트'라는 신조어는 정확지 않다. 그는 단지 굶었을 뿐이다. 체중 70㎏인 성인 남자의 하루 소비열량은 2100~2400㎉. 체중이 줄면서 그의 하루 소비열량은 1600㎉로 줄었는데, 열량이 200㎉인 유동식(씹지 않고 삼킬 수 있는 환자용 음식)을 하루 3~4캔씩만 먹고 버텼으니 몸무게는 까무룩하게 빠져나갔다. 31인치였던 바지 사이즈는 26인치로 줄었다.

―그렇게 배가 고파도 일상생활이 가능한가요.

"(촬영지인 부산의) 호텔 방에서 일부러 커튼을 쳐놓고 어둠침침하게 있었어요. 배고프니까 잠도 안 오더라고요. 새벽 5시쯤 자면 7시쯤 일어났어요. 침대에 누워서 노트북 컴퓨터로 영화 보고 음악 듣고, 인터넷 쇼핑하면서 지냈습니다."

그는 샤워하다가 두 번 기절도 했다고 한다. 극도로 예민해진 몸에 더운물이 닿으니 혈관이 팽창하면서 잠깐 정신을 잃은 것이다. 그는 "2시간 정도 샤워실에 누워 있다가 깨어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렇게까지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나 스스로 루게릭 환자라는 생각이 들지 않으면 스크린을 뚫고 관객에게 보여줄 자신이 없었어요. 살이 빠지지 않았는데 그런 연기를 하면 뭔가 부자연스러웠겠죠. 몸을 못 움직이면 눈으로 표현하는 게 더 간절해져요. 몸뿐 아니라 감정을 끄집어내야 하는 거죠."

영화 첫 장면에서 그는 왼손과 왼발을 못 쓰는 연기를 했다. 그는 촬영 한 달 반 전부터 왼손과 왼발을 가능한 한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런데도 세차하다가 넘어지는 장면에서는 나도 모르게 왼손이 올라가서 NG가 나더라고요. 참 나, 한 달 반을 연습했는데."

‘내 사랑 내 곁에’의 한장면.

―평소 독한 사람이란 소리를 듣는 편인가요.

"그런 적은 없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남들 앞에서 춤추고 연기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학예회나 소풍 땐 늘 남들 앞에서 뭔가 했어요. 중고생 때 교회에서 성극(聖劇)을 하면서 배우의 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죠."

그는 역할 제의를 처음 받았을 때 "못하겠다고 도망다녔다"고 말했다. "그런데 연기 욕심이 난 게 아니라, 안 하고 싶어도 할 수밖에 없는 역할이 있고 하고 싶어도 못하는 역할이 있더라고요."

―몸을 혹사시킨다고 미국 배우 크리스천 베일에 비유되기도 합니다만.

"그 사람 영화 중에 '레스큐 돈(Rescue Dawn)'이란 작품이 있어요. 거기서 크리스천 베일이 구더기를 먹는데, 저는 그 사람이 실제 구더기를 먹었다고 믿어요. 어우, 끔찍해. 만약 구더기가 아니라면 몰입이 깨지겠죠. 결국 얼마만큼 진정성을 보여주느냐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김명민은 그 밖에도 숀 펜, 대니얼 데이루이스, 로버트 드 니로를 존경하는 배우로 꼽았다.

―그 정도의 진정성이라면 배우 아니라 다른 일을 했어도 잘했겠네요.

"사업을 했다면 빨리 성공하고 돈도 엄청나게 벌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거울을 보면 만족하는 편입니까.

"전혀 만족 못해요. 배우 할 얼굴이 아니란 얘기 정말 많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럭셔리한 역할은 전혀 못했어요. 만날 거지, 졸병 이런 거 했죠. 그런데… 지금 생각하면 제 얼굴이 배우에 맞는 얼굴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는 예전 몸무게보다 적은 65~66㎏을 유지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번 감량에서 체중이 그쯤일 때 "반응이 폭발적이었다"고 했다. 10년은 젊어 보인다, 탤런트 이민호(22)와 비슷해 보인다는 말들을 들었다고 했다.

차기작에 대해 묻자 그가 말했다. "정하지 못했어요. 제 몸이 최상의 컨디션이 아닌데 지금 다음 작품을 결정하는 건 무책임한 일이 아닐까요." 동아새국어사전은 형용사 '독하다'를 ①독성이 많다 ②모질고 잔인하다 ③참고 견디는 힘이 굳세다로 풀이했다. 그는 독한 사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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