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공무원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결정은 민주노총의 정치투쟁과 전투적 노동운동 노선에 대한 혐오감이 확산되고 있는 노동계의 큰 흐름에 대한 일종의 '역류(逆流)'다. 치열한 생존경쟁에 노출된 민간 기업 노조들이 민노총을 속속 이탈하고 있는 상황에서, '철밥통'으로 불리며 신분 보장을 받는 공무원 노조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했다.

1995년 창설 후 최대 위기에 놓여 있던 민노총은 덕분에 '긴급 영양제'를 맞게 됐지만 이것이 노동운동의 흐름 자체를 바꾸지는 못할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올 들어 KT·쌍용자동차·인천지하철 노조 등 20여개 산하노조가 탈퇴했고, 10월에도 서울메트로·대구지하철·광주지하철 노조의 탈퇴가 예정돼 있어 통합 공무원 노조의 가입은 민주노총에 일시적 '진통제'에 불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민노총은 공무원노조의 가입이 위기 국면을 벗어나 대정부 투쟁에 힘을 받을 수 있는 호기가 될 수 있다고 여기고 있다. 그러나 민노총의 하락세를 근본적으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명지대 경영학과 이종훈 교수는 "민노총에 몇 개 노조가 가입 혹은 탈퇴한다고 해서 위기가 오거나 사라지는 게 아니다"라며 "민노총 위기의 본질은 지나친 투쟁 중심적·정치적 노동운동이 현장 조합원들에게 염증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말했다.

민간기업 노조들이 연이어 민노총을 탈퇴하는 가운데 통합 공무원 노조가 민노총에 가입한 배경에 대해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다.

노동계에선 현 정부의 공무원 봉급 동결과 공직기강 감찰 활동 강화, 공공부문 선진화 정책 등이 하급 공무원들의 불만을 고조시킨 것으로 분석한다. 노동부 관계자는 "공무원 노조 가입이 가능한 6급 이하 공무원들 사이에 현 정부의 공무원 처우에 대한 불만이 쌓여온 것으로 분석된다"며 "공무원 노조원들은 투쟁적 노선의 민노총 가입을 통해 대 정부 교섭 등에서 더 유리한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기대한 것 같다"고 말했다.

공무원들은 자기 직장의 경쟁력을 생각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민노총 가입을 선택했다는 분석도 있다. 치열한 시장 경쟁에 노출된 민간기업 노조는 정치투쟁이 회사의 경쟁력을 약화시켜 결과적으로 노조원의 이익에도 악영향을 미친다는 고려에 따라 투쟁적·소모적 노동운동에서 탈피하고 있다. 반면 일자리를 보장받는 공무원 노조는 이런 걱정 없이 정치적 노동운동을 통해 자기 몫을 키우려 한다는 것이다.

22일 밤 서울 영등포구 민노총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 회견에서 임성규 민노총 위원장, 정헌재 전국민주공무 원노조 위원장, 오병욱 법원공무원노조 위원장, 손영태 전국공무원노조 위원장(왼쪽부터)이 3개 노조의 통합 과 민노총 가입을 발표한 뒤 환호하고 있다.

김태기 단국대 경제학과 교수는 "공직감찰 활동이 강화되는 등 공직사회를 정상화시키려는 현 정부의 정책에 대해 공무원 사회가 반발한 것"이라며 "임금 등 근로조건이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공무원들이 내년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투쟁력이 있는 민노총을 선택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통합공무원노조가 민노총의 정치투쟁에 가세하고, 정부가 이에 대해 강경대응할 경우 향후 민노총과 정부 간의 갈등이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의무화하고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조항은 공무원노조법뿐 아니라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공무원복무규정 등에도 광범위하게 규정돼 있다. 그럼에도 민노총은 "사회의 민주적 개혁을 통해 전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한다"는 명분으로 정치투쟁을 계속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장기적으론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공무원 노조의 가세로 민주노총이 '우경화'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11만명의 통합공무원노조는 조합원 수에서 금속노조(14만7000여명), 공공운수연맹(14만2000여명)에 이어 민노총 내에서 세 번째로 큰 산별 연맹이 된다. 정치활동이 금지되고 임금이 법으로 정해지는 공무원 노조의 특성상 민노총의 대정부 강경투쟁 노선에 100% 추종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분석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민노총 내에서 전교조가 그렇듯 공무원 노조도 고립되는 경향을 보일 것"이라며 "이는 민노총의 투쟁성이 약화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핫이슈] '공무원 노조 민노총 가입'

▲본지 9월 23일자 등 공무원 노조의 민주노총 가입 기사에 대해 민주노총은 통합공무원노조는 합법적 영역에서 공직사회 개혁을 중심으로 활동할 것이며, 민주노총의 결정에 일방적으로 따를 의무는 없다고 알려왔습니다. 또 민주노총 파업 현장에서 늘 국보법 철폐 등의 깃발이 나부끼는 것은 아니라고 알려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