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까말로 너 요즘 완전 정줄놓했더라."(솔직히 까놓고 말해서 너 요즘 완전 정신줄 놓았더라.)

"어제 급벙했는데 깜놀했잖아. 미자들만 잔뜩 있더라."(어제 번개모임 가졌는데 깜짝 놀랐잖아. 미성년자들만 잔뜩 있더라.)

해독 가능하다면 당신은 신세대다. 요즘 청소년들은 기왕이면 같은 말도 줄여서 이야기한다. '버카'(버스카드), '참김'(참치김밥), '미자'(미성년자), '열폭'(열등감 폭발)처럼 굳이 줄여 말할 필요도 없는 단어를 굳이 두세 음절로 축약해 얘기하는 건 기본. 초성만으로 대화하는 경우도 흔하다. 'ㄱㅅㄱㅅ'(굽신굽신) 'ㅎㄷㄷ'(후덜덜)…. 줄임말이 이렇게 열풍처럼 번지고 있다.

일러스트= 정인성 기자 1008is@chosun.com

'금지단어'를 바꿔라…누리꾼 문화

전문가들은 줄임말 열풍의 가장 큰 원인으로 인터넷을 꼽는다. 각종 인터넷 사이트엔 댓글을 달 때 욕설이나 음담패설에 해당되는 단어를 등록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이 같은 조치를 피해 '표현의 자유'를 찾으려는 네티즌들이 선택한 게 바로 줄임말 조어(造語)다.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놈) '이뭐병'(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 'ㄷㅊ'(닥쳐) 같은 단어가 대표적이다. 1980년대 학생들 사이에서 '학생주임'을 '학주', '담임선생님'을 '담탱'으로 몰래 줄여 부르며 흉보던 수준을 넘어, 이젠 문장이나 어구를 축약해 비속어나 욕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줄임말로 새로운 비속어를 창작하는 경우도 늘어나고 있다. '정줄놓'(정신줄 놓았구나), '병맛'(거북하거나 비호감인 사람을 가리키는 말) 같은 말이 대표적이다.

입력하기도 귀찮다…언어도 '경제적'으로 쓰는 시대

휴대전화는 줄임말을 퍼뜨린 일등공신. 90바이트 내외에 모든 걸 축약해서 전달해야 하는 문자메시지에 적응하기 위해 10대 청소년은 적극적으로 줄임말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깜놀'(깜짝 놀라다) '버카'(버스카드) '버정'(버스정류장) '빙바'(빙그레바나나우유) 같은 말이 이 같은 경우에 속한다. 외국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이어진다. 'omg'(oh my god), '4eae'(forever and ever), 'tnx'(thanks), 'wo'(without) 같은 인터넷 줄임말은 이제 일반언어처럼 쓰인다.

못 알아듣겠으면 놀지 마…유대강화 언어

줄임말의 또 다른 특징은 그야말로 끼리끼리 통하는 사람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경우가 많다는 것. 특정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만 쓰다가 퍼져 나가는 말이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언어학자 김해연은 한국사회언어학회에 발표한 논문을 통해 '줄임말은 때론 특정집단의 언어가 되어 경우에 따라 은어처럼 쓰이기도 한다. 유대성을 갖기 위해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고 밝히고 있다. 인터넷 채팅하는 사람들끼리 쓰다 이젠 관용어처럼 변해버린 '급질'(급한 질문), '즐감'(즐거운 감상)이 이 같은 예에 속한다. 최근엔 '흠좀무'(흠 그게 정말이라면 좀 무서운데) 같은 말도 나왔다.

자전거 동호회 사람들이 즐겨 쓰는 '즐라'(즐거운 자전거 라이딩(riding)), '브렉'(브레이크), '프렘'(자전거 프레임) 같은 단어나 화장품 동호회 사람들은 사용하는 '메베'(메이크업 베이스), '파데'(파운데이션), '자차'(자외선차단제) 같은 말 역시 빨리 말하기 위한 용도로도 쓰이지만 이들끼리 유대를 강화하기 위한 언어유희로도 쓰인다. 기업에서 이 같은 현상을 이용해 마케팅용으로 줄임말을 만들기도 한다. '한끝'(한 권으로 끝내기), '공신'(공부의 신) 같은 이름을 붙인 학습참고서도 있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줄임말에 대한 전문가들의 입장은 제각기 다르다. 한글학회 박동근 연구원은 "우리말 파괴라는 견해도 있지만, 우리말엔 자정능력이 있어 의사소통에 문제가 되는 언어는 어차피 자연도태되니 크게 우려할 필요가 없다는 견해도 많다"고 설명했다.

과거 '옥떨메'(옥상에서 떨어진 메주) '라보때'(라면으로 보통 때운다) 같은 준말이 유행했지만 지금은 잘 쓰이지 않거나 2000년대 초 외계어가 유행했다가 사라진 예는 이 같은 주장을 잘 뒷받침한다.

서혁 이화여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그러나 "10대 청소년이나 어린이들이 줄임말을 반복해서 사용하면 극단적인 경우에 소통장애를 겪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무조건 쓰지 말라고 혼내면 아이들이 부모에게 벽을 느끼는 역효과가 생긴다. 서 교수는 "'정확한 뜻을 설명해 달라'고 부탁하는 게 좋다. 지나친 준말이 소통에 방해가 되고 불편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아이들 스스로 느끼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욕에 중독된 10대들의 삐뚤어진 언어 세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