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게 아니지. 그렇게 하면 속도가 엄청나게 느려진단 말이야. 내가 가르쳐 준 대로 하라고 했잖아!”

20일 오전 11시 광주광역시 북구의 한국폴리텍 5대학 내 제2공학관. 군대 유격 조교를 연상시키는 빨간색 모자에 흰색 반팔 티셔츠를 입고 운동화를 조여 신은 안상수 교수(금형학과)가 흰색 프로그램 조작기 앞에 앉아 연신 숫자버튼을 누르고 있는 학생 3명에게 외쳤다.

“뭐..가끔 욕도 합니다만 그런다고 때려 치고 나가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요. 허허.”

지난 9월2일부터 나흘간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안 교수가 이끈 통합제조 직종 팀은 지난 2007년에 이어 다시 한번 금메달을 땄다. '통합제조'는 3명이 한 팀을 이뤄 주어진 한 제품을 설계부터 생산까지 하되, 원가계산을 해 최소 비용으로 최대 효율을 내는 팀이 좋은 점수를 받게 된다. 이번 대회에서는 태양광 발전장치와 운동기구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작품을 만드는 게 과제였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황태영 선수가 경기를 치르고 있다

안 교수의 지도 아래 금메달을 거머 쥔 선수들은 황태영(20), 임중승(20), 김형준(19)씨. 모두 안 교수 수업을 듣는 학생들이다. 이 세 명은 모두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기 전 안 교수의 눈에 들어 이 대학에 입학해 지난 2월 태극마크를 달았다.

대회도 대회지만 준비과정이 만만치 않았다. 작년 3월부터 대회까지 일년 반 동안 쉰 날은 올해 설날 단 하루. 담배와 여자친구는 꿈도 못 꿨다. 황태영씨는 “대회 때 집중력에 영향 있을 수 있다고 감독님이 담배도 못 피게 해 이틀에 한 갑 피우던 담배를 하루 두 개비로 줄였어요”라고 말했다. 황씨는 또 대회 3달 전에 여자친구에게 “그만 만나자”고 했다. 안 교수가 “여자친구를 선택하든 금메달을 선택하든 둘 중 하나만 하라”고 으름장을 놔서다.

하루 훈련 시간표는 군대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매일 오전 6시30분에 일어나 안 교수와 선수 전원은 학교 운동장을 10바퀴씩 뛰었다. ‘체력이 있어야 경기도 잘한다’는 안 교수의 신념 때문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전 8시50분부터 오후 10시30분에 자기 전까지 하루 12시간 가량 훈련을 계속했다. 임중승씨는 “군대에 왔다고 생각하고 참았죠. 꿈에서도 작업하던 기계가 빙빙 도는 게 이러다 금메달 못 따면 정말 큰일이라고 생각했어요”라고 말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 출전한 대한민국의 김형준(왼쪽)선수와 임중승 선수가 경기 도중 컴퓨터로 작업 하고 있다

10개 나라가 통합제조 직종에 참가한 가운데 대한민국의 실력은 단연 1등이었다. 일본, 호주, 스위스 등이 은메달과 동메달을 두고 다투는 모양새였다.

한국이 1등이라는 인식이 퍼지자 견제도 심했다. “집중해서 제가 맡은 과제를 하고 있는데 옆에 일본 심사관이 바짝 붙어 서서 보고 있는 거에요.” 제자들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장면을 목격한 안 교수가 바로 달려가 “왜 이렇게 붙어 서서 보냐”고 항의했더니 “선수들한테 배우는 것일 뿐”이라는 변명을 했다.

최종 채점을 할 때도 견제는 계속됐다. 태양광 발전장치는 전력이 많이 생산돼야 좋은 점수를 받는데 일부 심사관들이 일부러 한국의 기계를 살살 돌리기도 했다.

좋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제작 시간이다. 총 22시간이 시험시간으로 주어 졌는데 한국은 10시간만 사용해서 기계를 다 만들었다. 남보다 짧은 시간으로 좋은 제품을 만드니 점수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금메달을 딴 통합제조 직종의 대한민국 선수들이 폐막식에서 태극기를 흔들고 있다

한국팀은 2일 오전 8시30분 경기가 시작했지만 정오가 넘어서 경기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쟁국 감독들이 돌아가면서 저한테 오더니 ‘시작한 지 벌써 3시간이 흘렀는데 한국선수들은 도대체 어디 있는 거냐?’며 불안해했죠” 그 시각 황씨 등 3명은 숙소에서 경기 전략을 재점검하고 있었다. 어치피 사용한 경기시간만 계산에 들어가기 때문에 급할 필요 없었다.

한국팀은 100점 만점에 95.7점이라는 높은 점수를 받고 금메달을 땄다. 선수들은 각각 5000만원의 상금을 받고 대기업에서 입사제의를 했다.
금메달리스트 3명은 대회가 끝났지만 예전처럼 오전 일찍 실습실에 나온다. 23일부터 전라도 광주에서 열리는 전국기능경기대회에 나갈 후배들을 도와주기 위해서다.

“놀고 싶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죠. 하지만 2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서 다시 금메달을 따기 위해선 저희가 배운 것들을 후배들에게 다 물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과학기술 1위 한국을 후손들에게 물려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