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장벽이 무너지기 엿새 전인 1989년 11월 3일. 모스크바 크렘린궁의 소련 공산당 지도부는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었다.

블라디미르 크루치코프 KGB(국가보안위원회) 국장: "내일 베를린과 다른 도시들에서 50만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올 겁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Gorbachev) 공산당 서기장: "우리가 동독을 잃으면 국민에게 설명할 길이 없소. 하지만 서독 없이는 동독을 계속 살려나갈 방법도 없소."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 "차라리 우리가 베를린장벽을 허무는 게 낫겠소."

고르바초프: "서방은 독일이 통일되는 걸 원치 않지만 그걸 우리가 막기를 바라고 있소. 우리와 서독 간의 충돌을 유발해서 장래에 우리와 독일이 '작당'할 가능성을 없애려고 하는 겁니다."

동유럽에 민주화 열기가 들끓고 동서독을 가른 베를린장벽이 흔들리던 당시, 유럽과 소련 주요 인사들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발언록이 공개됐다. 1991년 권좌에서 물러난 고르바초프가 개인 연구소에 소장하고 있던 비공개 국가 문서 일부를 영국 일간 더타임스가 입수해 11일 보도했다. 20년 만에 공개된 소련 정치국의 녹취록에는 페레스트로이카(개혁)의 주역 고르바초프와 '철의 여인' 마거릿 대처(Thatcher) 영국 총리, 프랑수아 미테랑(Mitterrand) 프랑스 대통령의 보좌관 자크 아탈리의 노골적인 말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당시 유럽의 지도자들은 '독일 통일 지지'라는 서방의 공식 입장과는 달리 임박한 독일 통일 앞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그중에서도 대처의 반감이 가장 심했다.

베를린장벽 붕괴 두달 전인 9월 23일 대처는 모스크바에서 고르바초프를 만나 은밀한 요청을 했다. "독일 통일은 영국이나 서유럽에 이롭지 않아요. 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공식 발표와는 다르게 들리시겠지만 그건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독일 통일은 전후 국경선에 변화를 가져와 전 세계의 안정을 뒤집고 우리 안보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기 때문에 허용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 대처는 "독일 통일을 막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달라"고 부탁했다. 동구의 민주화 물결에 대해서도 "서방이 탈(脫)공산화 쪽으로 밀어붙이지는 않을 것이며 소련 안보를 위협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미국도 같은 생각이다"라고 말했다.

당시 유럽 동정을 살피던 고르바초프의 보좌관들도 "유럽 정치인들은 하나같이 독일 통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고 크렘린에 보고했다. 특히 미테랑은 독일 통일을 막기 위해서라면 '자연재해 대비 합동 군사 협력'으로 위장한 프랑스-러시아 군사 동맹까지 생각하고 있다는 보고까지 올라왔다.

미테랑의 보좌관인 아탈리는 장벽이 무너지고 난 뒤 고르바초프의 보좌관을 만나, "독일 통일을 눈앞에 두고도 소련은 아무렇지 않은가? 그걸 막기 위해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을 건가?"라고 다그쳤다. 그는 독일 통일이 임박했던 1990년 4월에는 미테랑에게 "만약 이런 일(독일 통일)이 일어나면 나는 화성에 가서 살겠다"라고 했다.

고르바초프는 고르바초프대로 당시 동구 공산당 지도자들의 완고함에 넌더리를 냈다. 개혁에 끝까지 저항한 동독의 에리히 호네커(Honecker) 공산당 총서기에 대해서는 '멍청이'라고 불렀다고 더타임스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