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백신 제조회사인 영국계 다국적 제약사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이 이미 약속한 150만명분의 신종플루 백신 외에 내년 1~2월에 500만명분의 백신을 한국에 추가 공급하기로 했다.

GSK의 한국 법인인 GSK코리아 김진호 사장은 2일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금년 말까지 각 나라에서 주문한 신종플루 백신 수요량을 채우고 내년 초에는 한국에 백신을 우선적으로 추가 공급하기로 내부 결정이 이뤄졌다"며 이같이 밝혔다.

지난주 한국 정부는 GSK로부터 연내에 150만명분의 백신을 공급받기로 GSK의 백신 본부가 있는 벨기에에서 계약을 맺었다. 김 사장은 이 계약을 마무리 짓고 이날 아침 귀국했다. 이에 따라 한국은 국내 제약사 녹십자의 생산분 500만명분을 더하면 겨울이 끝나기 전까지 일단 1150만명분(인구의 24%)을 확보할 수 있게 됐으며, 백신 부족 걱정은 상당 부분 덜 수 있을 전망이다.

김 사장은 "GSK 백신은 11월에 첫 접종이 이뤄질 것"이라며 "아마도 국내에서 우리 것이 처음 투여가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만약 그 이전에 신종플루 대유행이 발생하여 정부의 긴급 요청이 있으면, 방역요원 등에게 쓸 백신 시제품 50만 도즈(dose·1회 접종단위·인플루엔자 백신은 한 사람이 2회 접종해야 충분한 면역력이 생김)도 우선 공급할 수 있다고 그는 밝혔다.

GSK코리아 김진호 사장은“한국 정부가 백신 공장 설립 조건을 유연하게 하면 국내 설립을 재추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전 세계가 백신 구하려고 난리인데, 올해 150만명분 가져온 것도 쉽지 않았겠다.

"사실 우리도 기대 못했다. 올해 생산량은 이미 몇 년 전 각 나라가 인플루엔자 대유행시 우선적으로 공급받기로 '선(先)구매 계약'을 한 것들이다. 진짜 여유가 없다. 정부 책임자(이종구 질병관리본부장)가 벨기에 본부까지 오니까 본사에서 움직였다. 나는 일주일 전부터 미리 가서 한국인 지사장으로서 한국 상황을 설명하고 임원진을 설득했다."

―다른 나라들은 백신을 미리 확보했다는 말인가?

"그렇다. GSK는 대유행시 최대 6억 도즈를 생산할 계획인데, 이 중 3억 도즈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30개국이 선구매 계약을 한 분량이다. 2000년대 초·중반 조류독감이 발생하면서 각국 정부가 인구의 50% 정도 분량을 이런 방식으로 확보했다. 영국은 100%다. 당시 한국 정부에도 선구매 계약 필요성을 얘기했지만,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한국의 선구매 분량은 6만 도즈뿐이다."

그는 현재 생산되는 신종플루 백신은 모두 항원(抗原)보강제를 첨가한 것이라고 했다. 항원보강제는 백신의 항체 생성 효과를 높이는 첨가물로, 백신 1개에 쓰이는 바이러스 균주(菌株)를 2~4개 쪼개서 제조하므로 생산량이 그만큼 늘어난다.

김 사장은 "항원보강제 백신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에 똑같이 공급되는 것"이라며 "그렇게 하지 않으면 대유행에 필요한 백신 수요량을 생산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항원보강제는 그동안 말라리아와 자궁경부암 예방 백신 등에 써왔기 때문에 안전성은 문제가 없다고 그는 덧붙였다.

그는 2회 백신 접종을 반드시 같은 회사 것으로 맞아야 면역 효과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한번은 GSK, 한번은 녹십자 것을 맞으면 효과를 장담하지 못한다. 따라서 정부가 치밀한 접종 계획을 세워서 혼란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

―3~4년 전 GSK는 국내에 백신 공장을 지으려 하지 않았나?

"그랬다. 아시아 지역 전체에 공급할 백신 공장을 한국에 세우려 했다. 당시 손학규 경기도 지사를 독일 공장에 모시고 가서 견학시켰다. 하지만 수도권 공장 규제 때문에 경기도에 못 짓게 됐다. 그래서 충북 오송에 지으려고 했지만 (정부는) 지방균형발전 정책 때문에 전남 화순이 아니면 안 된다고 하더라. 연구 인프라나 유통 여건을 감안했을 때 서울에서 멀면 타산성이 없다고 판단해 결국 포기했다. 투자 규모가 수천억원대였고, 백신 생산량이 5000만 도즈였다. 백신은 안보 산업인데 아쉽다."

―백신 공장을 유치하면 우리한테 어떤 이득이 있나?

"캐나다는 GSK 백신 공장을 유치하여 지금 아주 여유로운 상황이다. 캐나다 인구가 3200만명인데, 2회분인 6400만 도즈를 생산하기 전까지는 GSK 백신이 캐나다 밖으로 못 나가도록 계약돼 있기 때문이다. 다국적 제약회사라도 그 나라에 있으면 그 나라 것이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한국회사'와 '외국회사'를 나눠 보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 근무하는 사람 다 한국인이고, 한국 사람이 먹을 약과 백신을 만드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백신 공장 설립 조건을 유연하게 하면 다시 추진할 의향이 있다."

지난 4월 멕시코에서 신종플루가 터지고 나서 우리나라 정부는 6월에 신종플루 백신 구매 입찰 공고를 냈다. 그러나 GSK를 포함한 메이저 다국적 백신 회사들은 아무도 참여하지 않았다. 그 연유를 물었다.

"입찰 조건에 현실성이 없었다. 임상시험 다 끝내고, 식약청 허가받고, 국가 검증(1~2개월 걸림)까지 마친 신종플루 백신을 11월까지 공급하라는 조건이었다. 백신이 언제 개발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그 조건을 맞추겠는가. 이런 응급 상황에서는 일단 백신이 생산되는 대로 공급받는다고 조건을 달아야지 겨울철 일반 독감 백신처럼 입찰 공고를 내면 누가 응하겠는가. 당시 정부가 제시한 백신 가격은 7000원대로 수익성도 없었다. 현재 백신 가격은 항원보강제 사용 등으로 원료 값이 오르면서 1만4000~1만8000원 한다."

김 사장의 얘기를 종합하면, 우리나라는 백신을 미리 확보할 기회를 3번 놓친 셈이 된다. ①대유행에 대비해 선구매 계약을 하지 않았고 ②굴러온 백신 공장을 내쳤으며 ③대유행 경고 후에도 유연한 백신 구매 조건을 제시하지 않아 조기 확보에 실패했다.

그는 미국·영국 등 선진국들은 요즘 항원보강제 비축에 나서고 있다고 전했다.

"어차피 대유행이 오면 현재의 백신 생산 능력으로 수요량을 못 채운다. 그런 상황에서는 항원보강제도 모자란다. 따라서 항원보강제라도 미리 비축해 뒀다가 변종 인플루엔자가 등장할 때마다 균주에 항원보강제를 갖다 붙여서 생산량을 일시에 늘리려는 영리한 전략이다."

그는 "거의 모든 백신회사가 겨울철 독감 백신 생산을 멈추고 신종플루 백신을 만드는 상황이기 때문에 올겨울 계절 독감 백신 수급도 여의치 않을 것"이라며 "분명 독감 백신 접종 수요도 늘어나 품귀 현상이 올 수 있으니 이에 대한 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홍삼, 매실이 신종플루와 싸운다
[특집] 신종플루 오해와 진실, 제대로 알고 대처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