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훈 사회부 차장대우

지난달 중순 제주도의 한 원룸에서 40대 초반의 여성이 피살된 채 발견됐다. 범인은 범행에 사용한 흉기와 손가방을 물이 가득 담긴 욕조에 버렸다. 방안에 묻은 피도 닦아낸 상태라 미제사건으로 남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용의자는 사건 발생 14일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건물 입구에 설치된 CCTV가 결정적인 단서가 됐다. 경찰은 범행시간대에 출입한 751명의 얼굴을 확보하고, 피살자와 통화했던 531명을 비교했다. 수도권에서 절도 행각을 벌이다 제주도로 건너온 김모(42)씨가 용의선상에 올랐다. 그는 경찰에 붙잡힌 뒤 범행 사실을 털어놓았다.

CCTV가 각종 범죄사건에서 '해결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자살한 스타 최진실씨의 유골을 훔쳐간 범인은 납골묘 옆에 설치된 CCTV에 걸렸고, 서울 도심 출근길에 현금수송 차량을 탈취하려 했던 남자도 차량에 설치된 CCTV에 찍힌 얼굴을 경찰이 공개수배하자 8시간 만에 자수했다.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연쇄살인마 강호순을 잡아낸 것도 안산시 한 도로에 달린 대당 4000만원짜리 광역형 CCTV였다.

지난 6월 성남에서 발생한 여직원 황산 투척 사건 용의자도 현장 인근 CCTV에 차량과 얼굴이 찍히는 바람에 경찰에 붙잡혔다. 지난해 국보 1호 숭례문 방화사건, 일산 초등학생 납치 미수사건 등 CCTV의 활약은 눈부시다. 2000년 이후 해결한 사건만 해도 300건이 넘는다.

CCTV는 'closed-circuit television'(폐쇄회로 텔레비전)을 줄여 부르는 말이다. 일반 텔레비전과 달리 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일부 특정한 사람들만 '폐쇄적'으로 본다는 의미다. CCTV는 1990년대부터 널리 보급되기 시작했다. 그 선봉에 섰고, 지금도 전 세계에서 'CCTV 의존도가 가장 높은 나라'가 영국이다. 국민 14명당 1대꼴인 440만대가 설치돼 있다.

영국이 'CCTV 천국'이 된 사연은 이렇다. 1993년 IRA(아일랜드공화국군)가 런던 도심에서 자행한 폭탄 테러로 수십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치안 당국은 '테러 예방' 차원에서 런던 시내 곳곳에 CCTV를 설치했다. '사생활 침해'라는 반대 여론도 국민의 안전이 우선이라는 논리에 밀렸다. 런던의 보안시스템은 'Ring of Steel'(강철 고리 또는 철옹성)로 불린다.

현재 지구촌에서 돌아가는 CCTV는 약 3000여만대로 추정된다. 해마다 20% 정도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의 분석이다. 미국에는 22명당 1대꼴(1350만대), 한국에는 18명당 1대(250만대)의 CCTV가 설치돼 있는 것으로 추산된다. 단위면적 기준으로 보면 한국이 1㎢당 25대로 세계 최고다.

산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CCTV는 한국의 '블루오션'이다. 지난해 1조2000억원 규모의 디지털 CCTV 시스템 시장의 40%를 한국 기업들이 점유했다. 인터넷으로 카메라 조작과 녹화 및 처리를 하는 디지털 시스템을 2007년에 처음 내놓은 것도 한국이다.

문제는 이렇게 우리 생활, 산업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CCTV에 대한 제대로 된 법이 없다는 점이다. CCTV는 흉악범죄 예방과 범인 검거의 일등 공신으로 박수를 받기도 하지만, 때론 공간 프라이버시(territorial privacy)를 침해하는 대표 요소로 비난을 받는다.

지난해 공동주택 승강기와 놀이터 등에 CCTV 설치를 의무화하려던 계획은 '주택건설기준 등에 관한 규정개정안' 입법예고 당시에는 포함됐다가 부처 간 협의과정에서 빠졌다. 무분별한 남용이나, 정보의 독점과 침해를 막기 위해서는 설치와 운용 등에 관한 뚜렷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정부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산업 발전과 사회 변화에 걸맞은 법과 제도를 마련하지 못하는 정부는 2류일 뿐이고, 국민의 신뢰도 얻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