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건 개발본부장

올겨울 신종 플루의 대유행이 예상되면서 정부는 내년 2월까지 1300만 명(인구의 약 30%)분의 예방백신을 확보한다는 목표 아래, 600만 명분은 국내에서 생산하고 700만 명분은 해외에서 구입해온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국내 유일의 백신 생산 제약회사 녹십자에서 백신·의약품 개발을 책임지고 있는 이병건(53) 개발본부장은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올겨울까지 정부가 목표로 하는 물량을 확보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밝혔다.

신종 플루 같은 인플루엔자 백신은 항생제 등을 안 먹이고 키운 닭에서 나온 '청정 계란'에 일일이 바이러스 균주(菌株)를 찔러 넣어 배양하는 방식으로 만든다. 이 본부장은 "통상 독감 바이러스는 계란 하나에 2.5~3명분의 백신이 나오는데 신종 플루 바이러스는 1.5명분밖에 안 나온다"며 "이러다 보니 우리는 물론 다국적 제약회사들의 백신 생산 물량도 절반 가까이 줄어들어 국제 백신 시장에 비상이 걸렸다"고 말했다.

―전세계가 백신 구하려고 난리겠다.

"전쟁이다. 다국적 백신 제조회사들도 생산물량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심지어 우리한테도 연락이 온다. 10여 개 국가에서 백신 주문이 들어왔다. 시가(時價)의 두 배를 주겠다는 곳도 있고, (혀를 차며) 접종 허가를 안 받아도 좋으니 공장에서 나오자마자 달라는 곳도 있다. 우리나라도 백신 모자라는데…. 우리가 수출하면 국민들한테 맞아 죽을 것이다."

바이러스의 유전자 구조 특성에 따라 계란에서 잘 자라는 것이 있고 안 자라는 것이 있는데, 이번 신종 플루는 계란 배양 효율성이 떨어지는 축에 속한다. 계란 수를 늘려 생산 물량을 늘릴 수 있지만 문제는 계란 확보가 간단치 않다는 데 있다.

이 본부장은 "청정 계란을 얻으려면 6개월 이전부터 닭을 특수 시설에서 키워야 하는데 이미 늦었다"며 "쓸만한 계란이 있는지 전국의 양계공장을 다 뒤져서라도 어떻게든 우리 생산 물량은 맞출 각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외 조달이 어려운 이런 특수 상황에서는 백신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특단의 조치'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특단의 조치란?

"항원(抗原) 보강제 첨가라는 새로운 방법이 있다. 백신 원료에 이 화학물질을 첨가하면 면역 유발 능력이 2~4배 증가돼 그만큼 백신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 최근에 나온 기술이다."

―안전성은 확보됐나?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다. 하지만 지난해 한 다국적 제약회사에서 겨울 독감 백신을 이렇게 만들어 4500만 명한테 접종했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그래서 일단 우리가 생산할 600만 명분 중 350만 명분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고, 나머지 250만 명분을 갖고 항원 보강제로 2~4배 키울까 고민하고 있다. 이게 성공하면 우리 힘으로 모두 합쳐서 1000만 명분 이상 만들 수는 있다. 정부와 상의할 일이다."

국내 생산 백신은 11월 중순쯤부터 접종이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녹십자는 전 공정을 풀 가동하여 이번 달부터 매달 100만 명분씩 생산할 계획을 갖고 있다. 다음 달 7일부터 고대구로병원 등에서 이뤄지는 임상시험에는 지원자가 빗발쳐 이미 접수가 마감됐다.

―수년 전부터 변종 인플루엔자 대유행 경고가 나왔는데, 우리나라의 백신 자체 생산 능력이 왜 이리 적은가?

"그나마 올해 처음 인플루엔자 백신을 자체 생산하는 것이다. 이것마저 없었으면 어떻게 할 뻔했나. 독감 백신을 최대 2000만 명분 만들 수 있는 시설은 갖췄다."

―왜 미리 생산량을 늘리지 않았나?

"양계 산업에 6개월 이상 수십억원의 투자를 해야 하는데, 백신 만들어 놓고 안 팔리면 회사가 망한다. 더욱이 독감 백신은 겨울이 지나면 다 폐기해야 한다. 민간 회사가 그런 위험을 감수하기란 어렵다."

―정부의 지원은 없었나?

"미약했다. 선진국은 10년씩 장기로 백신 구매 계약을 해서 제약회사가 생산 시설을 늘리도록 지원하는데 우리는 1년 단위로 계약한다. 몇년 전 한 다국적 제약회사가 경기도에 백신 공장 지으려고 했는데, 수도권 규제로 지방 가서 지으라고 하니까 포기하더라."

이 본부장은 새로이 개발되고 있는 신종 플루 치료제에 기대를 걸고 있다. 미국에서 개발하고 있는 '페라미비르'라는 차세대 항바이러스 약물이다. 한 번 맞으면 치료 효과를 내는 주사제다.

그는 "우리가 국내 임상시험을 맡아서 했는데 타미플루에 내성을 가진 인플루엔자에도 효과가 컸다"며 "미국 질병통제센터가 아직 사용 허가가 안 난 이 약물을 벌써 비축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 약물을 올해 말쯤 국내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사용 승인 신청을 낼 예정이라고 그는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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