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초 신데렐라처럼 나타난 임은지(부산 연제구청)는 지난 수년간 '한국의 미녀새'로 불린 최윤희(원광대)의 수식어를 가져가 버렸다.

여자 장대높이뛰기를 시작한 지 불과 1년여 만에 임은지는 4m35의 한국 기록을 수립하며 국내 1인자의 자리에 올랐다. 한국육상에서 4m35는 이전까지 상상하기 힘든 높이였다. 임은지는 장대를 잡은지 불과 1년 만에 그걸 넘어버렸다.

16일(한국시각) 임은지는 독일 베를린 올림픽슈타디온에서 벌어진 제12회 세계육상선수권대회 여자 장대높이뛰기 예선 B조 16명중 꼴찌를 기록하며 결선 진출에 실패했다. 시작 높이인 4m10을 두 번 만에 넘었다. 하지만 두 번째 높이인 4m25에서 세 번 모두 실패하며 경기를 마쳤다. 불과 며칠 전까지 이탈리아 포미아에서 함께 훈련했던 세계 1인자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러시아)는 4m55를 한 번 도전해 성공, 가볍게 결선에 올랐다.

그녀와 함께 이신바예바의 훈련 캠프에서 '인간새' 세르게이 부브카(은퇴)를 키워낸 비탈리 페드로프의 지도를 지켜봤던 김세인 대표 코치(부산연제구청)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7만명 가까운 거대 관중 앞에 선 임은지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의외로 당차게 국내 기자들과 인터뷰를 했다. 그녀는 "오늘은 제 기록에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을 냈지만 이탈리아 전지훈련을 통해 뭐가 부족한지 알았기 때문에 자신있다"고 말했다.

울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울지 않았다"며 살짝 웃었다. 이날 저조한 성적의 가장 큰 이유는 이탈리아에서 훈련 도중 왼발목을 삔 것이었다.

임은지의 기록은 지난 4월 최고인 4m35를 넘고 난 후 계속 4m00(5월, 6월, 7월)으로 후퇴했다가 이번에 4m10으로 약간 반등했다. 이번 대회 결선 통과 커트라인은 4m50이었다. 그녀가 2년 뒤 벌어지는 대구 세계육상선수권에서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진출하려면 최소 4m50 이상을 넘어야 한다. 현재로선 가장 좋았을 때보다 15cm를 더 끌어올려야 한다.

이런 상황에서 임은지의 자신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그녀는 이탈리아에서 완전히 새로운 매커니즘을 접한 듯 했다. 장대높이뛰기의 전 과정을 중시했던 종전 훈련 방식에 비해 비탈리 코치는 장대를 갖고 달려와 매트 근처의 홈에 찍는 방법과 장대를 잡고 몸을 공중에서 차고 올라가는 등 세부적인 부분을 강조했다.

임은지는 "한국에 돌아가면 이탈리아에서 배운 체조 및 보강 운동을 잘 하려고 한다. 이신바예바는 고무줄로 무릎을 끌어올리는 훈련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임은지는 올해말까지 아시아육상선수권, 전국체전 등 세 개 대회에 더 출전한다. 그녀는 "앞으로 넘을 기록을 미리 얘기할 수는 없지만 자신있다"고 당차게 말했다. 기록이 부진하면 시무룩한 표정으로 핑계를 대는 다른 한국 대표 선수들과는 분명히 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