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무명의 미국 IT업체 테크서치가 인텔에 특허침해 소송을 걸었다. 인텔의 펜티엄프로급 컴퓨터 칩이 자신들이 특허를 지닌 명령어 축약형 컴퓨팅(RISC) 칩 기술을 무단 도용했다는 것이었다. 테크서치는 두어 해 전 인터내셔널메터시스템스가 개발했던 기술을 이 회사 경영이 악화된 틈을 타 사들였었다. 테크서치는 인텔의 칩 판매액의 3%를 매년 로열티로 내든가, 합의금 5억달러를 내라고 요구했다.

▶인텔측 변호사 데트킨은 테크서치를 "남이 땀 흘려 번 돈을 날로 먹으려는 특허강도"라고 비난했다. 테크서치가 명예훼손으로 고소하자 데트킨은 '특허강도'라는 말을 취소하고 '특허괴물'(Patent Troll)로 바꿔 불렀다. 이때부터 '특허괴물'은 자기 제품은 하나 없이 특허분쟁을 걸어 배상금만 노리는 회사를 가리키는 말이 됐다.

▶'특허 파파라치' '특허 해적'으로도 불리는 특허 사냥꾼 기업은 수백개가 성업 중이다. 지적재산권에 강한 미국계가 대부분이다. 가장 대표적인 '인터랙추얼벤처(IV)'는 바로 '특허괴물'이라는 말을 만들어낸 데트킨이 차린 회사다. 인텔, 마이크로소프트, 시스코 등을 주주로 끌어들인 뒤 풍부한 자금을 무기로 세계 2만여건의 특허를 사들여 해마다 천문학적 특허 수입을 올린다. 불경기에 파산한 기업의 특허를 헐값에 사 모으는 게 특기다.

▶특허괴물의 소송 공격은 종종 치명적이다. 블랙베리라는 스마트폰 제조업체로 유명한 캐나다 리서치인모션(RIM)은 2003년 '특허괴물' NTP와의 소송에 져 미국 내 블랙베리 판매금지 처분을 받았다. 결국 6억달러를 주고 합의했지만 그 바람에 회사가 파산 직전까지 몰렸다. 전문 특허괴물은 아니지만 일본 니치아화학과의 특허분쟁에 휘말린 코스닥 알짜 중견기업 서울반도체도 주가가 몇토막으로 곤두박질치고 600억원의 소송비용을 들여야 했다.

▶특허 사냥꾼들은 세계 대학과 연구소를 돌며 될성부른 기술을 아이디어 단계에서 입도선매한다. 우리도 이들의 먹잇감이다. 서울대 114건을 비롯해 KAIST, 연세대, 고려대 등이 다국적 특허전문기업과 공유 계약을 맺은 기술만 260건이 넘는다고 한다. 수억원이 드는 해외특허출원 등을 해주는 대신 나중에 특허수입이 생기면 반반씩 나누는 조건이다. 한미FTA가 발효되면 미국계 특허괴물이 한국 기업을 겨냥한 특허분쟁이 더 기승을 부릴 것이라고 한다. 21세기 특허전쟁에서 특허괴물들로부터 국부를 지킬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