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항수 특파원

5일 오후 4시 중국 남부 선전시 바오안(寶安)구 서쪽에 있는 '쑹웨이(松維) 전자보드' 유한공사 생산현장. 휴일이지만 가공·도장·검사·포장 등 작업 라인마다 작게는 20명에서 100여명이 모여 바삐 일하고 있다. 전체 직원은 1200여명. 투명 비닐 신발을 신어야만 일단 공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다.

쑹웨이는 컴퓨터와 TV, 게임기, 오디오, 카메라, 리모컨 등에 들어가는 PCB(인쇄회로기판)를 생산하는 대만 기업이다. 최근엔 매월 평균 약 2250만개(약 15만㎡)의 PCB를 생산하면서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국의 LG와 삼성, 대만의 라이톤과 폭스콘, 미국MS애플, 일본 소니 등이 주(主)고객이다.

이 회사의 다니엘 우(吳俊德) 부사장은 "라이톤과 폭스콘 등 대만 전자회사들의 주문량이 크게 늘고 있다"며, "대만과 중국 현지 회사들의 수요가 작년 60% 수준에서 올해는 70%대로 늘었다"고 말했다. 반면에 한국 회사들에 대한 공급은 15%에서 10%로, 미국과 일본, 동남아도 25%에서 10%대로 떨어졌다. 그는 "양안 관계가 좋아지면서 중국 기업들의 대만산(産) 구입이 계속 느는 추세"라고 말했다.

선전에는 쑹웨이뿐 아니라 26만 명의 종업원을 거느린 폭스콘 등 수백 개의 대만 기업들이 들어서 있다. 또 장쑤(江蘇)성 쿤산(崑山)의 대만 기업 전용단지를 비롯해 광둥(廣東)성의 둥관(東莞)과 푸젠(福建)성의 샤먼(厦門) 등도 대만 기업들의 밀집 지역이다. 5년 전에 이미 중국 진출 대만 기업이 6만개를 넘었다.

경제규모에서 무역 의존도가 70%를 넘는 한국과 대만에, 중국은 모두 1위의 교역 상대국이다. 두 나라 모두 대중(對中) 교역량이 전체 교역량의 20% 이상을 차지한다. 그러나 지난 1년간 중국과 대만은 산업과 정치, 문화 면에서 더욱 밀착하면서 '차이완(Chiwan)'이란 새 현상을 굳혀왔다. 양안(兩岸)의 이러한 밀월(蜜月)은 한국의 경쟁 산업 분야에는 위협이 되고 있다.

대륙엔 대만의 주문 밀려들고 중국 선전시 바오안(寶安)구에 있는 쑹웨이(松維)전자보드 유한공사 직원들이 양안 관계 호전으로 늘어난 주문량을 감당하기 위해 주말(5일)에도 출근해 작업을 하고 있다.

한국의 주력 상품 중 하나인 LCD (액정표시장치) TV의 중국 내 시장 점유율 변화도 쑹웨이의 납품 비중 변화와 유사하다. 시장조사기관인 디스플레이서치 등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 LCD TV 시장에서의 한국 제품 점유율은 작년 1분기 16.7%에서 6.7%로 급감했다. 반면 중국 현지업체들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55.6%에서 77.5%로 급증했다.

또 한국산 LCD패널의 중국 내 점유율도 작년 1분기에는 46.2%에 달했지만, 올해 1분기에는 29.7%로 떨어졌다. 그 틈을 대만 기업들이 파고들었다. 대만 기업들의 점유율은 같은 기간 35.6%에서 56.5%로 뛰었다. 최근 대만 일간지에서는 '陸資來臺(육자내대)'란 제목을 자주 볼 수 있다. 대륙 자본이 대만에 몰려온다는 뜻이다. 특히 대만 경제부가 지난 1일 대만의 192개 업종에 대해 중국 자본의 직접 투자를 허용한 이후, 후속 조치들이 쏟아지고 있다.

대만 자본과 중국의 노동력이 합치던 양안 협력이 이제는 거꾸로 중국의 거대 자본이 대만에 공장을 짓고 최첨단 산업에 진출하는 시대를 맞은 것이다. 192개 업종은 ▲컴퓨터와 전자부품, 자동차, 방직, 플라스틱 등 제조업 64개 ▲육상·해상·항공 운수업, 요식업 등 서비스업 117개 ▲공항과 항만, 관광지 등의 공공건설 분야 11개다. 대만 경제부 쉬다웨이(徐大衛) 쌍방무역 조장(부국장에 해당)은 본지 인터뷰에서 "이번 결정은 대만 정부가 오랜 기간 심사숙고한 것으로 양안의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만 연합보(聯合報)는 "이번 조치로 대만의 자금 줄에 숨통이 트이고, 양안의 평화가 다져져 결과적으로 대만에 대한 신뢰와 국제경쟁력이 오르는 '1석3조'의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반겼다.

한국 기업 관계자들은 또 양안이 올해 하반기에 체결하려고 하는 'ECFA(경제협력체제협상)'의 진척 상황을 주시한다. ECFA는 ▲관세장벽 철폐 ▲상품·노무·자금의 자유왕래 ▲투자개방 및 이중과세 방지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ECFA가 타결되면 공업제품은 대만 관세율 약 4%와 중국 관세율 9%가 대폭 삭감된다.

작년 한 해 중국이 수입한 상위 50개 품목 중 무려 34개의 주요 공산품과 기초소재 품목에서 한국과 대만은 겹쳐 있다. 타이베이 무역관의 이민호(李民浩) 관장은 "한국은 그동안 각개전투를 하다 양안이 밀착하면서 갑자기 2대1 협공을 당한 꼴"이라며 "반도체와 가전, 석유화학, 기계, 자동차 부품 등 주력 업종에서 양안 협력의 시너지 효과가 나타나기 전에 한국도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양안 밀착'은 대만의 거리에선 바로 피부에 와 닿는다. 2일 오전 11시쯤 중국의 문화재 70여만점이 소장된 타이베이(臺北)의 국립고궁박물관. 전시실마다 각기 다른 여행사 깃발을 든 가이드 주위로 우르르 몰려 있는 이들은 모두 대륙에서 온 단체관광객들이었다. 하지만 단체마다 사투리가 확연히 다를 정도로 대륙 곳곳에서 날아들었다. '옥찬주광(玉燦珠光)'이라는 이름의 308호 전시실에서 배추 모양의 비취옥(翠玉白菜)을 구경하던 유젠팡(游建芳·35·보험회사 직원)씨는 "푸저우(福州)에서 60명이 5박6일로 놀러 왔다"며 웃었다. 지린성 창춘(長春)에서 18명과 함께 온 장칭(張淸·36)씨는 "우린 너무 멀어서 8박9일 일정으로 왔다"고 했다. 고궁박물관의 직원 쑨펑이(孫鳳儀)씨는 "작년 7월 양안 간 주말 직항 운항이 시작된 이후 대륙 관광객이 매달 급증한다"고 말했다.

대륙 관광객들은 '중정(中正·장제스의 호)기념당'과 스린(士林)야시장 등 타이베이 시내는 물론, 대만 중부의 아리산과 옥산, 일월담, 남부의 가오슝(高雄) 등 곳곳을 누빈다.

홍콩 문회보(文匯報)는 5일 "양안이 작년 7월 직항기를 띄운 이후 지난 1년간 4008편이 운항해 159만7000여명(탑승률 평균 80.2%)을 수송했다"며 "특히 중국 여행객 36만5550명이 대만을 여행하면서 180억 대만달러(약 6950억원)의 경제적 효과를 초래했다"고 분석했다.

☞ ECFA란

양안이 추진하는 '경제협력체제협상(Economic Co-operation Framework Agreement)'의 약칭. ▲관세 장벽 철폐 ▲상품·노무·자금의 자유무역 강화 ▲투자개방 및 이중과세 방지 등의 투자환경 개선 내용이 담겨 있어 국가간에 맺는 자유무역협정(FTA)과 내용이 흡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