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물사건 등 검찰이 자체적으로 확보한 범죄 단서를 근거로 수사한 사건의 피고인에 대한 무죄 선고비율이 고소·고발 사건 등 다른 사건의 무죄율보다 5배나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자체 첩보를 바탕으로 착수하는 수사에 핵심 수사력을 집중 투입하기 때문에 이들 사건에 대한 무죄율이 높다는 것은, 검찰의 수사능력에 대한 의문을 갖게 만든다고 법조인들은 지적하고 있다. 지난주만 하더라도 한일합섬 재산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된 동양그룹 현재현 회장과 인사청탁 명목으로 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강경호 전 코레일(옛 한국철도공사) 사장이 나란히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외에도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변양호 전 재경부 국장의 뇌물수수 사건, 조풍언씨 구명로비 사건 등 검찰이 자체 범죄 정보를 바탕으로 수사에 착수한 대형 사건에서 무죄가 잇따르고 있다.

한나라당 주광덕 의원이 최근 대검찰청에서 제출받은 검찰 내부자료에 따르면, 2004~2008년 5년간 검찰의 '인지(認知)사건' 수사로 기소된 사람(약식 기소 포함)은 모두 14만675명이다. 이 가운데 1.02%인 1430명이 1심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인지사건이란 고소·고발을 거치거나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이 아니라 검찰이 자체적으로 범죄 단서를 포착해 수사한 사건을 뜻한다.

이 같은 인지사건 무죄율은 같은 기간 다른 모든 사건(고소·고발되거나 경찰로부터 넘겨받은 사건의 합계)의 무죄율 0.21%(약식기소 포함 618만2677명 기소·1만2833명 무죄)에 비하면 약 5배에 달하는 것이다.

게다가 인지사건 무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2004년 0.71%이던 것이 2008년에는 1.57%로 2배 이상 올라갔다. 올해는 지난 4월까지 무죄율이 1.71%에 달했다. 약식기소를 제외한 정식재판 회부 사건만 따지면 무죄율은 3%를 넘는다고 검찰 관계자는 말했다.

인지사건에 대한 무죄선고가 많은 이유에 대해 검찰은 "원래 쉽지 않은 수사이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특수부에 주로 근무했던 검찰 간부는 "관련자들이 입을 맞추기가 일쑤이고, 더구나 재판에서 진술을 뒤집어 버리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하지만 법조계에선 "무리하게 기소하거나, 수사를 완벽하게 못했기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특수부 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수부 검사들이 실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나머지 덜 익은 사건을 무리하게 기소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고 지적했다.

부장판사 출신의 법조인도 "내사(內査) 과정에서 법 적용이 쉽지 않으면 과감하게 수사를 중단해야 한다"며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만 해도 여론에 떠밀려 무리하게 뛰어들었다가 검찰이 무죄선고를 자초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대검의 한 간부는 "1990년대만 해도 이른바 '중요사건' 수사에선 법원의 구속영장 발부 비율도 높았지만 최근엔 법원이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법원 관계자는 "검찰은 피고인이 법정에서 진술을 뒤집는 경우까지 대비해서 혐의를 입증할 증거수집에 더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