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서울 광장동의 한 호텔에 김형오 국회의장과 정세균 민주당 대표, 문국현 창조한국당 대표 등 정치권 지도자들이 모습을 나타냈다. 전날에는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 고위 관계자, 여야의원 10여명이 같은 장소를 찾았다. '제10차 세계 한인회장대회'를 보러 온 것이었다.

대회를 주최한 재외동포재단 권영건 이사장은 "지난 2월 국회에서 재외국민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법이 확정, 통과된 뒤 처음 개최되는 대규모 동포 행사라는 점 때문에 예년과 달리 정치권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재단의 다른 관계자는 "작년에는 개막식에 외교부 2차관도 겨우겨우 섭외할 수 있었는데 올해는 대통령이 직접 왔고, 그것도 잠깐 들르는 게 아니라 30여분간 회장단과 티타임 등을 가졌다. 정당에서도 작년에는 국회 소관 상임위 위원장 등 여야 의원 몇 명만 왔는데, 올해는 많은 의원들이 관심을 보였다"고 했다.

지난 2월 관련 법 통과로 국내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선거에 투표할 수 있게 된 재외동포 숫자는 어림잡아 240여만명이다. 한 표가 아쉬운 정치권의 입장에서 이들은 무시할 수 없는 '유권자 집단'이다.

민주당 정 대표는 이날 오찬장에서 와인 잔을 들고 "늦었지만 재외동포 여러분께서도 투표를 할 수 있게 됐다"며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큰 보배요, 자산인 해외동포 여러분의 건승과 번영을 위하여!"라고 했다. 문 대표도 "여러분은 대한민국의 희망"이라고 치켜세우면서 "여러분이 해외에서 큰 활동을 하실 수 있도록 동포청도 만들고, 2세 교육도 책임지겠다"고 건배사를 했다.

23일 열린 ‘제10회 세계한인회장 대회’개막식에서 중국 한인회장단이 태극기를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재외동포재단이 주최하고 외교통상부가 후원하는 이 대회에는 60개국에서 450여명이 참석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자유선진당은 이날 행사장에서 열린 '정당별 재외동포 정책 포럼'에서 미래 유권자들의 표심을 잡기 위해 치열한 예비 선거전도 치렀다. 한나라당 박준선 의원은 "현재는 비례대표 국회의원선거에서만 참정권을 인정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지역구 국회의원선거까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성곤 의원은 "앞으로는 재외국민이 인터넷 투표도 가능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했고, 자유선진당 이상민 의원은 "해외 지역 동포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해외지역구 의원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참석한 한인회장들의 목소리에도 과거와 다른 힘이 붙었다. 미주한인회 총연합회(미주한인총련) 남문기 총회장 당선자는 "미주 한인회 표가 80만표다. 15대 대선(김대중-이회창) 때 39만표 차이로 당락이 좌우됐음을 감안하면 얼마나 큰 표인가. 해외동포 사기가 높아졌다"고 말했다. 재중국한국인회 정효권 회장도 "참정권을 갖게 됨으로써 조국과 더 끈끈해졌고, 관심을 더 많이 갖게 됐다"고 했다. 또 다른 한인회장은 "법 통과 이후 해외를 방문해 우리를 찾은 국회의원들의 태도가 눈에 띄게 겸손해졌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정치권의 애정공세에 대한 반응이 따뜻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 미주지역 총회장 출신 인사는 발언권을 얻어서 "국회 자화상을 볼 때 창피스러운 마음이 든다"며 "저희들한테 좋은 격려와 찬사를 보내는 것도 좋은데, 우리 정치가 제 길을 갈 수 있도록 힘을 쓴다면 우리가 해외에서 더욱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공개 발언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다.

재외동포 참정권에 대해 제도적 보완을 요구하는 주장도 있었다. 미주한인총련 남 회장은 "LA만 해도 서울보다 훨씬 큰데 투표소가 하나인 것은 현실적으로 말이 안 된다. 투표소를 더 늘려야 한다"고 했다. 재일민단중앙본부 황영만 의장은 또 "참정권 부여로 인해 교민사회가 국내 정치와 연결되면서 똑같이 분열돼 갈등 현상을 빚지 않을까 염려되는 점도 있다"고 했다. 일부 한인회장들은 "공정한 선거관리가 가능할 것인가"하는 우려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