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운드 오브 뮤직’, ‘쉰들러 리스트’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인생은 아름다워’를 거쳐 ‘작전명 발키리’까지, 2차 대전 영화는 매년 한두 편씩 우리에게 찾아온다. 장르도 본격적인 전면전에서 소규모 전투, 멜로물과 휴먼드라마까지 다양하게 변주된다.

그런데 전혀 다른 방법으로 2차대전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조폭 두목 처칠과 인터넷 만화가 히틀러가 전쟁을 벌인다. 무솔리니는 피자집 사장이고, 괴링은 만화 매니아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독일의 롬멜과 영국의 몽고메리가 랩 대결을 벌인다.

인터넷 만화가 김선웅의 '본격 제 2차 세계대전 만화(이하 2차 대전 만화)'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2차대전을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해 그렸다"고 말한다. 김선웅 작가는 이름보다 굽신거리는 사람이라는 뜻을 가진 '굽시니스트'라는 닉네임으로 더 유명하다. 팬들은 뛰어난 사람을 가리키는 인터넷 용어를 빌려 그를 '굽본좌'라고 부른다. 그는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하고, 현재 성균관대 대학원에서 역사교육학을 공부하고 있는 28세 청년이다. 서울 혜화동 학림 다방에서 김선웅 작가를 만났다.

작가는 제 2차 세계대전을 "전쟁사 입문이자 현대 세계를 낳은 20세기의 신화"로 정의했다. 2차대전의 매력으로는 유럽부터 미국, 일본, 아프리카를 망라한 거대한 스케일을, 핵심인물로는 히틀러와 스탈린을 꼽았다.

“히틀러는 자신의 카리스마로 2차대전이라는 드라마 전체를 만들어낸 인물입니다. 또한 2차 대전의 가장 중요한 순간은 독-소전 초기의 4개월이죠. 그 엉킨 실타래의 중심에는 스탈린이 있습니다.”

김 작가는 “2차 대전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면 독일군의 팬이 될 수밖에 없다“며 그 이유로 독일군복의 디자인 센스를 꼽았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악마적인 멋이 줄줄 흐른다’. 영화 ‘작전명 발키리’에는 복장까지 정교하게 고증된 2차대전 당시의 독일군들이 등장한다.

" '2차 대전 만화'에서는 잘못된 고증에 대한 비판이 많았습니다. 한국사건 중국사건 세계사건, 언젠가 작정하고 전쟁사를 다뤄보고 싶습니다. 그 때는 패러디가 아니라 제 오리지널이 되겠죠."

그가 추천하는 2차대전 관련 서적은 다음과 같다. 2차대전의 의의를 익히는 목적으로 존 키건의 ‘2차 세계대전사’, 상세한 내용을 살피려면 오스프리(osprey) 출판사의 2차 대전 시리즈가 제격이라고 한다. 그리고 타임라이프의 30권짜리 2차대전 화보집을 읽고 나면 ‘신화’에 한층 다가설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선웅 작가는 “처음 출판 제의를 받았을 때는 희망과 용기로 가득 찼었는데, 출판 후에는 스스로의 부족한 역량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 때문에 ‘2차 대전 만화’ 2권은 밀도 높게 눌러 담느라 많이 늦어졌다. 올 여름 안에 출판될 예정이다. 작가는 그 외에도 ‘서양 미술사 만화’를 준비하고 있다.

만화는 이미지 언어의 호소력에 바탕을 둔 그림 이야기다. 작가가 이야기하면 사람들이 듣는다. 이것은 일종의 마법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고우영 작가다. ‘깊은 학문과 이를 부담없이 풀어내는 통찰력’을 발뒤꿈치까지라도 따라가는 게 소원이란다.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외국 문학으로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을 꼽았다. 나폴레옹과 사회주의, 그리고 워털루 전투에 대한 묘사에 감명 받았다고 한다.

김선웅 작가는 대학 시절 예술학교와 미술학원을 다니며 꾸준히 그림에 관심을 가져왔다. 그렇게 쌓아온 실력이 2003년 군복무를 마치고 패러디의 산실 디씨인사이드(dcinside.com, 이하 디씨)에 자리잡으면서 빛을 발했다.

그의 패러디 범위는 무척 넓다. ‘2차 대전 만화’가 웹상에 연재될 때, 패러디 된 요소를 해설해 주는 사람이 따로 있었을 정도다. 출판된 1권에도 해설이 달려 있다. 작가는 스스로의 패러디를 ‘맛보기식 패러디’라며 아쉬워했다.

“최훈님의 ‘삼국전투기’는 삼국지를 나름대로 변주하면서 완급조절을 합니다. 패러디는 주제에 쳐주는 양념이고요. 저는 패러디가 목적이고, 2차 대전 내용 자체는 일반론이죠.”

김 작가에 따르면 디씨는 한국 마이너문화의 두께가 드러나는 곳이다. 그는 “패러디는 그 사회의 문화적 역량을 알 수 있는 지표”라고 주장했다. 패러디는 서브 컬쳐(Sub Culture)의 역량이 쌓인 사회에서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패러디는 그 시기를 지나면 그 뜻을 눈치채기 힘든 상형문자가 된다”며 “현재의 대중을 위한 일종의 시대적 기념비”라고 덧붙였다.

“한국에서 메이저 문화란 TV 뿐입니다. 나머지는 모두 ‘매니아’나 ‘오타쿠’로 치부되죠. 제 만화를 통해 이 사회의 마이너들이 서로를 좀더 알게 되고, 다원화된 문화를 키워갈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