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병원은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구호를 실천하는 공간 같아요." 한국의 대형병원 건물 설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외국 설계사가 웃으면서 던진 말이란다. 산부인과부터 장례식장까지 한 빌딩에 있는 한국의 '백화점식' 종합병원은 이방인에게는 낯선 공간이다.

근래 지은 한국 종합병원의 시설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정평 나 있다. 호텔을 방불케 하는 깨끗하고 현대화된 시설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외국에서도 견학 올 정도다. 그렇다고 외형적으로 우리의 종합병원이 특출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나 싱가포르 등 의료선진국의 현대식 유명 병원과 겉모습은 거의 비슷하다. '한국형 종합병원'을 완성하는 결정적인 요소는 한국만의 내부 공간. 그중에서도 외국인들이 가장 신기하게 보는 공간이 장례식장이다.

병원 장례식장은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한국인의 특이한 장례문화를 수용한 '서비스 공간'인 동시에 병원의 입장에선 가장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는 '이익 창출 공간'이다. 건축사 박인수씨는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를 보여주는 건물이 관혼상제와 관련된 건물인데 그중에서도 한국의 병원 장례식장은 다른 나라에선 유례를 찾을 수 없는 형태"라고 말한다.

천장에 투명창을 달아 자연채광을 한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장례식장이 병원에 생기기 시작한 것은 20~30여년 전. 아파트 문화가 확산되면서 일반 가정에서 장례를 위한 공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면서부터다. 초반에는 병원에서 장례식장을 외부에 임대했지만 수익성이 높아지자 직영으로 바꾸고 인테리어에도 과감한 투자를 하기 시작했다. 1980년대 종합병원장을 역임했던 한 인사는 "장례식장 임대를 위해 청와대 '빽'이 동원될 정도로 큰 수익 사업이었다"고 말했다.

건축계에서 병원 장례식장의 인테리어와 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꾼 것으로 평가받는 장례식장은 1994년 문을 연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의 장례식장. 당시 설계를 담당했던 박혁수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 부소장은 "고급 석재를 쓰고 상주를 위한 샤워실 등을 구비한 상주실을 만든 최초의 장례식장"이라고 설명했다.

장례식장은 양적·질적으로 급속도로 진화하고 있다. 일단 규모가 눈에 띄게 커졌다. 서울의 종합병원 장례식장의 경우, 1호(빈소·접객실 등 포함)당 차지하는 평균 연면적이 70~80년대 50~60㎡에서 요즘엔 120~130㎡ 정도로 2배 이상 넓어졌다.

최근 장례식장의 디자인 이슈는 채광. 장례식장은 일반적으로 혐오시설로 간주돼 병원 지하에 위치하기 때문에 자연채광이 거의 되지 않는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최근에는 천장에 창을 내거나 중정을 둬 밝은 느낌을 주는 장례식장도 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