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학봉 산업부 차장대우

지난해 미 연방 하원의원 찰리 랭글이 뉴욕의 '임대료 규제 아파트' 4채를 빌려 쓰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져 뉴욕 시민들을 화나게 했다. 아파트 4채 월 임대료가 4000달러 정도로, 아파트 한 채의 시중 임대료에도 미치지 못했다. 특히 그는 외국의 임대용 주택에 투자해 짭짤한 월세 수입까지 챙긴 데다, 아파트 한 채를 선거 사무실로 사용해 비난이 쏟아졌다.

세계적인 팝가수 신디 로퍼는 2005년 미국 뉴욕 재판소에 임대료 소송을 제기했다. 그녀는 월세 3250달러를 내고 방 4개짜리 맨해튼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알고 봤더니 월 500달러로 임대료가 규제된 아파트. 임차인이 신디 로퍼로부터 받은 임대료의 일부만 집주인에게 지급하고 차익을 챙기는 '불법 임대영업'을 하고 있었던 것. 뒤늦게 사실을 안 신디 로퍼는 임차인에게 차익을 돌려달라는 소송과 함께 집주인에게 월 500달러만 내고 계속 세를 살게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뉴욕시는 1947년 2차 대전 참전군인 귀국 러시 등으로 임대료가 치솟자, 임대료 규제제도를 도입했다. 서민을 돕기 위해 마련된 제도였지만, 엉뚱하게 부유층까지 임대료 규제 아파트를 애용하고 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면서 사회적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1990년대에는 유명 여배우 미아 패로가 센트럴파크가 내려다보이는 방 11개짜리 고급아파트를 임대료 규제 제도 덕분에 시세의 20% 정도만 내고 살고 있는 것이 밝혀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임대료 규제 아파트의 입주자격을 제한하는 '미아 패로 법안'까지 만들어졌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임대료 규제가 일부 사람들에게는 '로또 당첨' 같은 행운을 누리게 하지만, 뉴욕의 전반적인 주거 사정을 더 어렵게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집주인들이 세입자들이 자진해서 나가게 하기 위해 집을 개보수하지 않아 슬럼화를 유도한다는 것. 건설사들은 임대료 규제 대상이 되지 않는 초고가의 고급 임대아파트를 짓는 데 몰두하고 있다. 실제 뉴욕은 임대료 규제 제도가 있지만, 대부분의 세입자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임대료를 부담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부작용 때문에 선진국에서는 소득 수준에 따라 임대료를 보조해주는 '바우처(voucher)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건축업자들이 임대아파트를 더 짓도록 하고, 세입자들은 자기가 원하는 지역의 원하는 주택을 선택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소득에 따른 지원이기 때문에 부자들이 임대아파트에 사는 모순도 막을 수 있다.

한국의 임대주택 정책은 이런 세계적 흐름과 정반대로 나가고 있다. 최근 서울시가 가장 성공한 정책이라고 자랑하는 장기 전세임대주택(시프트). 입주 경쟁률이 천정부지로 치솟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단지의 경우, 전세금이 주변시세의 60~70% 정도에 불과한 데다 소득에 관계없이 20년간 이용할 수 있어 중산층이 대거 청약에 나선 것이다.

정부와 서울시는 중산층용 임대아파트가 활성화되면 임대주택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꿀 수 있다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은 국민의 절반 정도가 일종의 임대주택인 전셋집에 살고 있는 현실을 무시한 것이다. 더군다나 장기 전세주택은 저소득층에게 돌아가야 할 복지혜택을 중산층이 차지하는 모순도 발생한다.

최저주거 수준 미달 가구가 20%에 육박하고, 임대주택에 입주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영세계층이 수두룩한 현실을 감안하면 정부와 서울시가 역점을 두고 추진해야 할 정책은 중산층 주거복지가 아니라 저소득층 주거 복지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