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호: 배우 송강호씨는 이번 칸 국제영화제에서도 남우주연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2006년 '괴물' 2007년 '밀양'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2009년 '박쥐' 등으로 4년 연속 칸 초청을 받았지.
영철: 영국 유명 언론매체가 송강호씨를 '한국의 톰 행크스'라고 극찬했죠. 로이터 통신은 최근 송강호씨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톰 행크스, 뱀파이어 되어 칸 향한다'(Korea's "Tom Hanks" heading to Cannes as a vampire)라고 보도했어요. 로이터 통신은 송강호씨가 출연한 영화 '넘버 3'와 '공동경비구역 JSA'를 비롯해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 등을 언급하며 "송강호는 한국에서 가장 확실한 스타 중 한 명"이라며 "그는 한국의 톰 행크스로 불린다"고 전했다죠.
일호: 송강호씨는 영화 '박쥐'의 아이디어를 박찬욱 감독으로부터 10년 전에 들었다고. '공동경비구역 JSA'의 촬영 장소인 갈대밭에서였다고 해. 그리고 박찬욱 감독은 그 당시 어느 날 아침 송강호씨와 소주 한 잔 하면서 '복수는 나의 것'과 '박쥐' 이야기를 자세하게 들려줬다고. 송강호씨는 '박쥐'의 최종 시나리오를 작년 중국에서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찍을 때 팩스로 받았다고 해. 박찬욱 감독은 영화 아이디어를 에밀 졸라의 '테레즈 라깡'이라는 소설을 읽으면서 정리했다고. 처음 구상했던 것과 가장 달라진 부분은 주인공의 직업이 의사에서 신부로 바뀐 것이라고 해.
영철: 이 영화를 통해 생애 최초의 제대로 된 베드신을 치렀죠. 이전에는 ‘살인의 추억’에서 비슷한 것이 있었고요. 정식 베드신은 처음이지만 연기하는 건 똑같다고 했어요. 옷을 입고 하느냐, 벗고 하느냐의 차이일 분 연기하는 측면에서는 같다는 거죠. 단지 카메라 앞에서 옷을 벗고 연기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했어요. 다른 장면들보다 고도의 정신력이 요구되고요, 이러한 부분은 배우뿐 아니라 지켜보는 감독과 카메라 감독도 마찬가지라고 했죠. 신부 역할을 하기위해 10kg을 감량했고요.
일호: 주인공 신부의 이름은 현상현이지. 거꾸로 읽어도 현상현. 주인공의 성기 노출이 화제가 되기도 했지. 카메라를 커팅하면 팬티를 올리면서 뒤돌아 나오는 신이 되는데 그렇게 촬영하면 갑갑했을 거라고. 그 행위 자체는 상현의 욕정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고 해. 신도들이 믿고 있는 신부로서의 상현이 이렇게 추악하고 수치스러운 인간이라는 걸 보여주는 행위였다고. 원래 시나리오에는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않았는데 박찬욱 감독이 촬영 전에 “이렇게 노출해서 찍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고 해. 딱 하루 고민했다고. 결정하고는 부인에게 이야기를 했다고. 부인은 아무 말도 안했다고 해. 시사회 끝나고 지인들 문자메시지가 몰려들고 부인 것은 맨 나중에 들어오는데 이번은 첫번째로 보냈다고. 잘했다고 말이야.
영철: 박찬욱 감독과 송강호씨는 술친구라고 해요. 작품을 같이 하지 않아도 자주 보는 사이라고 하죠. 두 사람은 명필름의 '공동경비구역 JSA'를 통해 만났다고 해요. 저쪽에서 바바리를 입은 박 감독이 씨익 웃으면서 걸어오는데 '영화감독이 저렇게 멋있을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죠. 저는 '공동경비구역 JSA' 시사회 끝나고 회식 자리를 갔어요. 송강호, 이영애, 박찬욱 감독님 등이 그 자리에 같이 있었어요. 아무튼 '재미있는 사람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그는 굉장히 진지하고 다른 세계의 사람 같았어요.
일호: 송강호씨는 박찬욱 감독에게 ‘박달리’라는 별명을 붙여줬다고.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 같다는 의미라고 해. 송강호가 어릴 때 달리의 그림 ‘기억의 연속성’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데 ‘박쥐’의 클라이맥스 시퀀스에서 그런 느낌을 받았다고.
영철: 송강호씨는 1991년 '동승'에 출연하면서 연극배우로 데뷔했죠. 영화배우로 데뷔한 것은1996년 홍상수 감독의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에 단역으로 등장하면서부터였죠.송능한 감독의 '넘버 3'에서 '불사파' 두목이면서 흥분하면 말을 더듬는 '조필'역으로 강한 인상을 남겼고요. "현정홥니다" 라고 부하 똘만이 녀석이 말을 거들자 "나가 있어. 내가 임춘애라면 임춘애야" 라고 계란을 막 날리던 그의 연기는 아직도 기억이 나요.
일호: 1991년 서울에 무작정 상경했고 극단 ‘연우무대’를 찾아가 연극배우가 된 거지. 그런데 송강호씨는 영화를 많이 안 보는 편이고 자신이 출연하게 된 영화의 시나리오도 많이 안 읽는다고. 한 번 정독하면 그걸로 끝이라고 해. 그리고 나선 현장에서 해결한다고. 그렇게 자신을 열어놓으려고 한다고 해.
영철: 송강호씨의 아버지는 동양화가였죠. 여고 선생님이기도 했고요. 부친은 자신이 육사를 가길 바랬다고 해요. 육사에 갔으면 어떤 인생이 펼쳐졌을까요. 아무래도 세계적인 영화배우가 더 어울리는 것 같아요. 내년에는 칸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일 있길 바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