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6일 대량살상무기 확산 방지 구상(PSI) 전면 참여를 선언한 것은 북한이 전 세계 비확산 노력을 정면으로 거스르는 핵실험을 강행한 상황에서 더 이상 동참을 미룰 수는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PSI 참여 방침을 확정해놓고도 남북관계 현안 등을 고려하느라 가입 계기를 잡지 못하고 있던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이 확실한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다. 정부는 4월 초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에 맞춰 PSI 가입을 추진했으나 "미사일이 아닌 평화적 목적의 인공위성을 트집 잡아 PSI에 전면 참여하려는 것은 대북 선전포고"라는 북한의 위협과 개성공단에 억류돼 있는 우리 국민의 안전문제가 대두되면서 수차례 가입시기를 번복하는 해프닝을 벌였다. 정부 관계자는 "이전에는 정부 내에서도 가입 여부에 대해 다른 말이 나왔었지만 이번에는 전혀 이견이 없었다"고 했다.

9·10월에 차단훈련 참가 예정

PSI에 전면 참여함으로써 우리 정부는 부분 참여 때와는 달리 앞으로 1년에 한두 차례 개최되는 운영전문가그룹(OEG:Operational Experts Group)회의에 참석해 WMD 관련 정보를 공유할 수 있고, 공동 차단훈련 등을 통해 국제적인 WMD 비확산 노력에 적극 동참할 예정이다. 정부는 당장 오는 6월 폴란드에서 열리는 OEG 회의에 역외권 국가로 참여하는 것을 전면 참여 이후 첫 일정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9월에는 호주에서 PSI 관련 워크숍이 열리고 9·10월에는 미국싱가포르에서 각각 차단훈련이 예정돼 있다.

실제로 WMD 및 운반 수단(미사일)의 불법적인 거래가 의심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다른 참여국과 협조하에 그러한 거래를 막기 위해 ▲내수·영해에서 WMD 운송 혐의 선박의 승선·검색 ▲WMD 운송 혐의 항공기의 착륙 유도 및 검색, 영공통과 거부 ▲항만·항공에서 WMD 관련 물자 환적시 검색 ▲우리 선박에 대한 승선·검색 ▲우리 선박에 대한 외국의 승선·검색 동의 등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

PSI 활동의 효과는 2003년 10월 'BBC차이나호'사건에서 잘 드러난다. 당시 독일 선적의 BBC차이나호는 우라늄 농축에 쓰일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싣고 리비아로 향하던 중이었다. 하지만 관련 정보를 입수한 미국의 협조 요청을 받은 독일 정부는 배를 이탈리아의 항구로 돌리도록 했고, 이탈리아 경찰은 이 배를 검색해 원심분리기의 거래를 막을 수 있었다. 이는 리비아의 자발적 핵 포기를 이끌어낸 성과로 평가받고 있다.

"남북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어"

일각에서는 PSI로 인해 남측 해경이 북한 선박을 수시로 검색하면 무력 충돌이 벌어질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 당국자는 "PSI에 정식으로 참여한다고 해서 새로운 규범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정선·검색 등의 활동도 기존의 규범에 따라 이뤄지기 때문에 남북간 무력 충돌 가능성이 더 커지는 것이 아니다"고 했다.

정부는 우리 영해에서 남북해운합의서를 비롯한 남북간 합의를 현재 적용하고 있고 이런 상황은 PSI 가입 후에도 동일하다. 남북해운합의서에 이미 정선·검색 등의 활동이 규정돼 있으나 이로 인해 북한과 직접적으로 부딪친 전례는 없다.

“北방사능 물질 찾아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 북핵실험 종합상황실 연구원들 이 26일 북핵실험 후 대기 속의 방사능 농도 측정을 위한 기류 변화 예측 지도를 보 면서 분석을 하고 있다.

또 북한이 실제로 WMD 관련 물자를 운송할 때 우리 영해를 지나갈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기 때문에 PSI로 인한 추가적인 충돌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공해상 충돌'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으나 공해는 PSI의 활동 범위가 아니다. 정부 당국자는 "남한의 PSI 가입이 북한에 직접적인 위협이 안 된다는 것은 북한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북한 배가 공해상에서 차단돼 충돌이 야기될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북한이 주장하는 것은 우리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말했다.

2003년 5월 미국의 주도로 11개국이 발의, 17개국으로 출범한 PSI에는 아시아지역 15개국, 아프리카·중동지역 16개국, 유럽 및 구소련지역 53개국, 미주지역 10개국 등 전 세계 94개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한국은 95번째 참여국이 된다. 중국은 현재 참여국은 아니지만 PSI 원칙을 지지하며 자국을 경유하는 항공기 선박 검색에는 어느 나라보다 성실히 PSI 활동에 협력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PSI(Proliferation Security Initiative·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 구상)

핵무기·생화학무기 등의 대량살상무기와 그 운반 수단(미사일)의 불법적인 거래를 통한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국가간에 정보 공유, 훈련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는 국제 협력체다. 2003년 5월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폴란드 '크라코프선언'을 계기로 영국·프랑스·독일·일본 등 서방 11개국의 발의로 출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