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0일 대검 특별조사실 1120호 의자에 앉은 '피의자 노무현'의 모습은 논쟁의 달인으로 불리던 과거의 노무현이 아니었다는 검찰 관계자들의 증언이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10시간 넘게 진행된 조사 시간 내내 중수부 수사팀의 추궁에 기를 못 폈다는 것이다.

'그날'의 조사는 이미 알려진 대로 노 전 대통령이 담배 한 개비를 피운 뒤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주임검사인 우병우 수사 1과장이 "노 전 대통령께서는 지금부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혐의의 피의자로 조사를 받게 됩니다. 서명해 주시죠"라며 조사 동의서를 내밀었다. 펜을 잡고 '노무현'이라고 서명하는 노 전 대통령의 손이 떨리는 모습이 수사상황을 검찰 간부들에게 중계하는 CCTV(폐쇄회로TV)에 비쳤다.

서명을 마친 노 전 대통령에게 우 과장은 "문재인 변호사의 입회 아래 검찰 조서를 작성한다는 문장도 친필로 써주십시오"라고 요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에 몇 글자를 적다가 "아, 그만 합시다"라며 펜을 내려놓았다고 한다.

이렇게 기선제압을 당한 노 전 대통령은 검찰이 지난달 30일 언론에 공개한 대로 '차분한' 태도와 어조로 시종일관 조사에 임했다고 한다.

수사검사와 노 전 대통령 간에 언쟁(言爭)이 벌어지면서, 노 전 대통령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상황이 빚어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했던 검찰 지휘부는 이에 "순조롭게 조사가 이뤄졌다"며 안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대통령이 조사 당시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게 물어봐야 한다'는 식의 답변을 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검사들 사이에선 "당당하지 못했다"는 반응들도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수사검사가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받은 100만달러를 아들에게 송금한 것을 아느냐"는 취지로 묻자, "나는 정치만 알지 집안일은 잘 모른다"는 식으로 답했다고 한다. 또 '청와대 관저에서 부인이 100만달러를 받았는데 남편에게 말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며 검사가 상식(常識)의 잣대를 들이대자, '청와대 관저는 넓다'는 식의 답변으로 빠져나가려 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특히 2006년 9월 박 회장이 회갑선물로 준 피아제(Piaget) 시계에 대해서도 "집사람이 받아서 나는 모르고, 그게 어떤 시계인지 얼마짜리인지도 모른다"는 취지로 답변했다고 한다. 노 전 대통령은 권 여사가 박 회장에게 받은 돈을 빚 갚는 데 썼다고 해명한 부분을 설명하는 과정에선 이미 알려진 대로 '자연채무'라는 법전에도 없는 희귀한 용어를 동원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