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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복사로서 그 곁을 지킨 중근은 누구보다도 빌렘신부의 권위적이고 억압적인 행태를 잘 알고 있었다. 아버지 안태훈에게서도 그 비슷한 것을 보아와서인지, 처음 한동안 중근은 그런 행태를 자부심과 확신감에 찬 정신의 특성으로 여겨, 빌렘신부의 불 같은 성품을 건드리지 않으려 애썼다. 온유(溫柔)와 겸손을 가르치는 사제로서보다는 불신(不信)의 세계를 상대로 호교(護敎)와 전교(傳敎)의 험난한 임무를 아울러 수행해야 하는 신앙의 투사로서 그를 이해하고, 교구의 번창과 더불어 그 독선과 폭력성이 누그러지기만을 기다렸다.

그러나 몇 해가 지나도 빌렘신부가 교인들을 압제하는 폐단은 줄어들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은 잘못이나 별것 아닌 말대꾸 몇 마디에도 신자들을 종이나 마소 보듯 후려치고 몰아대는 게 압제를 넘어 학대처럼 느껴지자 중근은 더 참지 못했다. 어느 날 빌렘신부가 또 뭔가 죄를 지은 교인을 때리는 걸 보고 참지 못한 중근이 교인 몇을 모아놓고 의논하였다.

"거룩한 교회 안에서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겠소? 우리들이 당연히 한성(漢城)에 가서 민(閔·뮈텔)주교에게 청원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오. 만약 민주교가 우리 청원을 들어주지 않으면, 라마(羅馬)교황께 가서 품해 올리더라도 기어이 이러한 폐단은 막도록 합시다."

그 말을 모두가 옳게 여겨 중근을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그중에 마음 약한 교우가 하나 있어 빌렘신부에게 몰래 그 일을 알려주고 말았다. 다음 날 중근이 복사로서 사제관을 들어서자 성난 빌렘신부가 들고 다니던 지팡이로 중근을 꾸짖으며 후려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지팡이가 부러지자 마구잡이 주먹질로 무수히 중근을 때렸다.

일러스트 김지혁 <a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books.chosun.com/novel/lmy/popup.html','se','toolbar=no,location=no,directories=no,status=no,menubar=no,scrollbars=no,resizable=no,copyhistory=no,width=1100,height=710,top=0');"><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tn_view.gif" border="0" align="absmiddle"><

아프고 분했으나 중근은 가만히 참았다. 빌렘은 아버지 안태훈보다 나이가 많을 뿐만 아니라 자부심 강한 아버지도 함부로 덤비지 않는 사람이었다. 거기다가 무엇보다도 영혼을 인도하는 사제였다. 중근이 이를 악물고 그 욕스러움을 참아내는 사이 빌렘신부도 어느 정도 속이 풀렸는지 매질을 멈추었다. 그리고 휙 돌아서 사라지더니 며칠 후 전에 없이 부끄러운 기색까지 보이며 타일렀다.

"내가 잠시 성을 낸 것은 육정(肉情)으로 한 짓이라 회개할 것이니, 우리 서로 용서하는 것이 어떤가?"

이에 중근도 감사하고 화해하였으나 그때 경험한 서양 선교사의 제국주의적 독선과 폭력성은 마음 깊이 상처가 되어 남았다. 그러다가 얼마 뒤 대학을 세우는 일로 다시 그들과 대립하게 되면서 새삼 덧나게 된다.

황해도에서 교회가 점점 흥성해지고 신도가 수만으로 늘어가던 어느 날 중근이 빌렘신부에게 말했다.

"지금 조선의 교인들은 학문에 어두워서 교리를 전파하는 데 애를 먹고 있습니다. 하물며 국가 대세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민(閔)주교께 말씀드리고 서양 수사회(修士會)에서 박학한 학사 몇 사람을 불러와 대학교를 설립하면 어떻겠습니까? 나라 안의 재주가 빼어난 자제들을 거기서 교육시킨다면 수십 년이 지나지 않아 반드시 큰 효과를 볼 것입니다."

처음에는 빌렘신부도 그 말을 옳게 여겨 중근과 함께 서울로 가서 뮈텔주교를 만나보기까지 했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을 들은 뮈텔주교는 그 자리에서 잘라 말했다.

"조선 사람들이 학문을 깊이 익히게 되면 천주의 교리를 믿는 일에 오히려 좋지 않을 것이니, 다시는 그런 의논을 꺼내지 마시오."

중근이 두 번 세 번 간곡히 설명했으나 뮈텔주교는 끝내 들어주지 않았다. 그리고 뮈텔주교가 그렇게 나오자 빌렘신부도 슬그머니 발을 뺐다. 그 바람에 어쩔 수 없이 헛걸음을 하고 고향에 돌아왔으나, 그때 이미 중근의 가슴속에는 민족주의적 자각이 일고 있었다.

"천주교의 진리는 믿을지언정 외국인의 심사는 믿을 것이 못된다."

그렇게 맹세하고는 복사노릇도 그만두고 배우던 불란서 말도 중도에서 그치고 말았다. 누가 프랑스 말을 배우는 것까지 그만둔 까닭을 묻자 중근이 대답했다.

"일본말을 배우는 자는 일본의 종놈이 되고, 영어를 배우는 자는 영국의 종놈이 된다. 나도 프랑스 말을 배우다가는 필경 프랑스 종놈을 면하지 못할 것이라 그만두어 버렸다. 만일 우리 조선이 부강해져 세계에 위력을 떨친다면 세계 사람들이 조선말로 서로 소통할 것이니 아무 걱정할 것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