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KCC 사령탑 취임 3년 만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허재(44) 감독은 국내 프로농구 사상 최초로 선수와 감독으로 모두 우승컵을 차지하는 이정표를 세웠다.

허재 감독은 선수 시절 ‘농구 대통령’ ‘농구 천재’ ‘농구 9단’이라는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다니던 최고의 스타였다. 상명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허재는 용산중학교를 거쳐 농구명문 용산고에 진학해 1학년이던 1981년 쌍용기 대회에서 우승하면서 스타 탄생을 알렸다.

고교 최고의 선수로 각광을 받았지만, 허재는 대학농구 양대 산맥을 이루고 있던 연세대와 고려대가 아닌 중앙대로 진학해 관심을 모았다. 곧이어 1학년이던 1984년 춘계연맹전에서 중앙대를 정상으로 이끌어 신인상에 오르면서 진가를 발휘하기 시작했다.

환상적인 드리블에 의한 개인돌파 능력, 송곳 패스, 화려한 골밑 플레이를 선보이며 한기범,김유택 등과 호흡을 맞춰 1986년 농구대잔치 2차 대회와 추계연맹전 우승을 이끄는 등 중앙대를 대학 최강팀의 반열에 올려놨다.

허재는 대학 졸업 후 기아자동차에 입단, 1991년 1992년 팀을 농구대잔치 정상으로 이끌어 최우수선수(MVP)로 뽑히는 등 1990년대 농구대잔치에서 최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프로농구에 진출해서도 허재는 승승장구 했다. 1997년 프로 원년에는 기아 우승의 견인차가 됐던 그는 1997-98시즌에도 팀의 준우승과 함께 플레이오프 MVP로 선정됐다. 이후 한 동안 우승과 인연이 닿지 않았던 허재는 2002-03시즌 원주 TG삼보의 챔피언 결정전 때 노장 투혼을 발휘하며 마지막 우승을 경험했다.

그는 개인기록에서도 프로농구 통산 365경기 출장과 4524 득점, 1572 어시스트, 1148 리바운드라는 대기록을 남겼다.

2003-2004시즌 원주 TG에서 플레잉코치로 활약하며 마지막으로 우승 반지를 꼈던 허재는 KCC 지휘봉을 처음 잡은 2005-2006시즌 팀을 4강 플레이오프에 올려놓아 “스타 출신 감독은 성공하기 어렵다”는 스포츠계의 속설을 뒤집었다.

이번 시즌에는 팀이 정규리그 초반 8연패를 당하며 9위까지 밀려났지만 팀의 최대 주축인 센터 서장훈을 내보내고 신인 가드 강병현을 받아들여 챔피언 결정전까지 진출하는 수완과 판단력을 보였다.

KCC가 8연패 충격을 딛고 우승까지 차지한 것은 허재 감독의 뛰어난 지도력이 아니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농구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