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충국 CMS 대표

한국은 OECD국가 가운데 국내 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사교육비 비중이 늘 1위다. 그런데 기초과목 중의 기초과목이라 할 수학 성적은 늘 형편없다. 사교육을 받는 비율에서 영어(55.6%), 국어(39.3%)를 제치고 수학이 1위(58.6%)인데도 그렇다.

2006년 공개된 '우리 대학생의 기초학력 수준'이라는 연구는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줬다. 우리 대학생 100명 중 15명이 초등학교 4학년 수준의 분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당시 문제는 '0.8, 13/20, 37/50, 0.27, 82/100가운데 가장 큰 수는 무엇인가?'였다.

757명 가운데 14.5%인 110명이 이 문제를 풀지 못했다. 그런가 하면 23.9%는 초등학교 6학년 수준의 백분율 문제를 틀렸다. '75.3%를 소수로 바르게 나타낸 것'이라는 오지 선다형 질문에는 100명당 24명 꼴로 오답(誤答)을 적고 말았다.

2007년 전국자연과학대학장협의회가 이공계 신입생 976명에게 중·고교 수준의 수학문제 20개를 주관식으로 냈다. 평균 점수가 100점 만점에 48.8점이었다. 상위권 6개대생들은 75.1점을 받았지만 중위권과 하위권 대학생들의 평균 점수는 각각 49.4점과 25.6점이었다.

4월14일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한 전국 고3 학력평가의 채점 결과 인문계 수리 '나'의 1등급 기준은 원(原) 점수 62점이었다. 2등급 46점, 3등급 33점, 8등급은 고작 7점이었다. '반타작'만 해도 2등급이란 얘기다. 3월 11일의 학력평가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수학이 30~40년 사이 내용이 확 바뀔 만큼 어려워진 것도 아니다. 인문계 학생들의 경우 어려운 미·적분이 빠진 대신 상대적으로 쉬운 행렬이 들어간 상태다. 반면 사교육은 오히려 늘고 있다. 그런데도 왜 수학실력은 퇴보하는 걸까.

최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한국교육의 높은 수준을 칭찬했다. 그런데 우리는 오히려 미국에서 실패한 초·중등 교육을 수입하자고 주장한다.

'쉽게, 더 쉽게, 적게, 더 적게'로 요약될 수 있는 미국식 초·중등 교육은 오바마의 말처럼 실패했다. 게다가 우리는 점수 따기 쉬운 과목만을 '편식(偏食)'하도록 교육과정을 바꿔 교육의 질적 하락을 불러일으켰다. 한마디로 학생의 수준에 맞는 수학·과학교육을 실시하지 못했다.

여기에 '선택 교과제'까지 시행하자 고교에서 수학과 과학이 기피대상이 된 것이다. 현재 이공계 신입생의 60%는 고교에서 미적분과 물리를 배우지 않는다. 이는 논리적인 문제해결능력이 생길 수 없는 구조를 강제로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다.

돈은 많이 들이면서 실력은 낮아지는 현상을 방지하려면 오히려 초·중등 수학교육의 내용이 더 높아져야 한다. 가르치는 '양'을 줄이는 것과 가르치는 '수준'을 줄이는 것은 전혀 다르다.

공교육이 무너지게 된 것은 학교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게 너무 쉽고 학교 시험의 난이도가 하향화됐기 때문이다. 학교 시험의 질적 수준을 개선할 때, 비로소 공교육은 인정받게 되고 바로 서게 된다. 단지 어렵고 복잡한 것을 가르치라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생각하고 고민할 수 있게 하는 주제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지선다형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통합적 사고력과 문제 해결력을 잴 수 있는 시험제도가 개발되고 보편화돼야 한다. 그러려면 장기적인 교육정책이 세워져야 한다.

1970~80년대의 수학교육은 계산과 논리만을 중시하는, 즉 좌뇌(左腦)를 많이 사용하는 수학이었다. 이 방식으로는 더 이상 수학을 잘할 수도, 좋아지게 할 수도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두뇌계발과 함께 수학도 잘하기 위해서는 잠자고 있는 우뇌(右腦)를 동시에 계발해야 한다. 우뇌는 이미지와 상상력, 공간감각처럼 창조적인 부분을 관장하기 때문에 계발이 절실한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교육정책은 우뇌에 대한 고민이 없었기 때문에 아이들이 머리를 쓰지 않고 공식과 기술에 의존하도록 만들었다.

수학은 끝까지 자기 힘으로 풀려고 하는 노력과 꾸준한 사고를 할 때 능력이 향상된다. 필자의 초·중등 수학교육 수준의 상향(上向)이 예전 본고사 세대로 돌아가자는 것은 아니다. 수학의 즐거움을 거세한 대학입시형 문제가 아니더라도 수학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내용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