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우 사람들팀장

얼마 전 마카오에 모습을 드러낸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의 인터뷰를 읽다 보니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일본언론과의 만남에서 "북한의 로켓 발사에 대한 일본의 대응은 자위를 위한 당연한 조치", "북한과 주변국 사이에 긴장이 높아질 것으로 생각되며 그 점이 걱정된다"고 말한 대목이다.

제3국의 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하면 아무 문제가 안 되겠지만 사태를 일으킨 당사자의 장남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다. 마치 범죄자의 입에서 자기 범죄에 대해 누가 묻자 "글쎄, 그게 왜 그렇게 했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네요?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반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인성을 분석할 때 '행동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라는 두 개의 눈으로 살펴보는 것은 그 뿌리를 알 수 없을 만큼 오래된 방법이다. 인간은 흔히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행동하고 싶어한다. 그것이 행동하는 자아, 본능적 자아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줘서는 안 되고 사람다움의 원칙을 지키려는 노력도 한다. 그것이 관찰하는 자아, 이성적 자아다. 도둑질은 행동하는 자아가 하지만 관찰하는 자아는 시간이 흐르면 자기가 한 도둑질을 후회하거나 반성한다. 일반적으로는 행동과 반성이 반복되고 누적되는 가운데 행동하는 자아의 수준은 조금씩 높아가고 행동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의 갭은 좁아진다. 그것이 인간적 성숙(成熟)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한 전직 대통령 패밀리와 그 패거리들이 질펀하게 벌인 돈 잔치의 실체를 놓고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그 실체적 진실이야 시간이 가면 드러나겠지만 지금 눈길이 가는 것은 사건의 한복판에 있는 그 전직 대통령이 쏟아내는 말들이다.

그는 지금까지 자신의 홈페이지 '사람사는 세상'을 통해 '사과드립니다', '부탁드립니다',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는 제목의 글 3개를 올렸다. 검찰과 법리 공방을 염두에 둔 나름의 '꼼수' 같은데 실은 거기에 실린 몇 가지 문장에서 '행동하는 노무현'과 '관찰하는 노무현'의 확연한 분리를 읽을 수 있는 단서가 숨어 있다.

4월 7일 올린 첫 글에서 그는 "응분의 법적 평가를 받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응분의 책임을 지겠다가 아니라 '행동하는 노무현'이 저질러놓은 행위에 대해 검찰과 겨뤄 법원의 '평가'를 받게 되는 것을 '관찰하는 노무현'이 우리들과 함께 지켜보겠다는 말로 들린다.

4월 8일 올린 두 번째 글은 국민들을 향해 충고까지 하고 있다. 그 또한 '관찰하는 노무현'의 발언이다. "저의 생각은 '잘못은 잘못이다'라는 쪽입니다. 또 좀 지켜보자는 말씀도 함께 드립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자신의 허물을 사과했으니 "홈페이지로 인해 욕을 더 먹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며 글을 맺고 있다. 이 또한 관찰자나 할 수 있는 이야기다.

4월 12일 '해명과 방어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라는 보다 노골적인 제목을 단 글에서는 "그동안 계속 부끄럽고 민망스럽고 구차스러울 것입니다. 그래도 저는 성실히 방어하고 해명할 것입니다. 어떤 노력을 하더라도 제가 당당해질 수는 없을 것이지만, 일단 사실이라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슨 사실(事實)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것일까?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사실 논란은 '받았다/안 받았다'가 핵심이다. 그런데 그는 '받긴 받았는데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다짐하고 있다.

행동하는 자아와 관찰하는 자아가 거의 무관할 정도로 서로 분리되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다. 정신의학에서는 이런 분리현상을 해리(解離 dissociation)라고 한다. 탈사회화(脫社會化)라고 해도 되겠다. 곤란한 상황에 처하면 자아분리를 통해 '행동했던 자아'와 그 상황을 외면하려 할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한때 '도덕의 화신'을 자처했던 전직 대통령 한 분이 이제 '도덕적 비난은 감수하겠지만 법적 책임은 없다'는 것을 입증하겠다며 변호사 출신답게 온갖 법률지식을 동원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하는 이런 나라의 국민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괴스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