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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밀로, 불을 밝히시오."

빌렘 신부가 권총을 눈에 띄게 허리띠에 꽂으며 곁에 있던 교리교사에게 말했다. 이내 환해진 교당 안으로 그때 여기저기 피탈이 난 사람을 묶어 앞세운 여남은 명이 우르르 몰려들어왔다. 빌렘 신부에게 저마다 나름의 인사를 하는 게 교인들 같았다.

"무슨 일이오?"

빌렘 신부가 엄한 표정으로 그들에게 물었다.

"신부님, 저자가 오늘 장터에서 터무니없는 말로 신부님을 비방하고 우리 천주교를 훼교(毁敎)하였기로 잡아왔습니다. 엄히 벌하여 주십시오."

"무슨 말로 나를 비방하고 어떻게 훼교하였소?"

"신부님은 어린아이를 사서 잡아먹는(買食) 서양귀신(洋鬼)이며, 천주교와 양교사는 서양 오랑캐들이 이 땅에 먼저 들여보낸 정탐척후대(偵探斥候隊)라고 했습니다."

그때 다시 끌려온 사람이 악을 썼다. 당차 보이는 중년 사내였다.

"이놈들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놀리지 마라. 내 모를 줄 아느냐? 네놈들은 서교도(西敎徒)라 일컬으며 작당하여 갖은 못된 짓을 다 하고 다니다가, 내가 몇 마디 바른 소리한 것을 트집 잡아 이리 앙갚음하는 것 아니냐? 이러고도 네놈들이 무사할 줄 아느냐?"

"저 사람들의 못된 짓이 어떤 것이오?"

빌렘 신부가 아무 내색 없이 그 사내를 보고 물었다.

"저놈들은 서로 짜고 궁장토(宮庄土)를 빼돌리고, 없는 빚을 서로 증거 하여 힘없는 이들을 털어먹었으며, 마름(舍音)들을 겁주어 소작을 마음대로 나누었습니다. 모두 양대인(洋大人)들의 위세를 앞세워 하는 짓인데, 흉악하기가 이전의 거짓동학군(僞東學軍)보다 더한 놈들입니다."

"그게 정말이오?"

일러스트=김지혁 <a style="cursor:pointer;" onclick="window.open('http://books.chosun.com/novel/lmy/popup.html','se','toolbar=no,location=no,directories=no,status=no,menubar=no,scrollbars=no,resizable=no,copyhistory=no,width=1100,height=710,top=0');"><img src="http://image.chosun.com/books/200811/btn_view.gif" border="0" align="absmiddle"><

빌렘 신부가 이번에는 교인들을 보고 물었다. 교인들이 목소리를 합쳐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무려면 천주 야소를 믿는 저희들이 그럴 리 있습니까? 저자가 악에 받쳐 하는 모함입니다."

"악에 받쳐 하는 모함이라니? 내가 무얼 그리 못할 소리를 했느냐? 청국에서는 세살 먹은 어린아이도 양귀들이 아이를 사서 잡아먹고(洋鬼買食��兒), 천주교가 침입하는 서양 오랑캐의 길라잡이라는 걸 다 안다더라."

끌려온 사람이 다시 교인들을 맞받아쳤다.

그때 뒤 따라오던 교인들이 교당 아래채에서 무언가를 꺼내 맞들고 교당 안으로 들어섰다. 관아의 것과 제법 비슷하게 짜 맞춘 밤나무 형틀이었다. 그러고 보니 그 곁의 교인이 들고선 회초리도 길이 석자 반에 굵기 세 푼이 넘지 않는다는 태(笞)의 규격과 비슷했다. 그 형틀과 회초리 묶음을 보자 악을 쓰던 사람의 기세가 주춤했다.

말없이 교인들과 그들에게 끌려온 사람을 번갈아 살피고 있던 빌렘 신부가 돌연 서릿발 같은 호령으로 끌려온 사람에게 꾸짖었다.

"내가 너를 해주 감영에 넘기고 관찰사에게 패지(牌旨)를 내면 매를 든 관리가 어느 말이 참인지를 가려낼 것이다. 어떠냐? 그리로 끌려가서 매를 맞고 실토하겠느냐? 여기서 바른말을 하고 천주님께 용서를 구하겠느냐?"

그 말에 무엇을 상기했는지 끌려온 사내의 낯빛이 허옇게 질리며 몸이 가볍게 떨렸다. 그 무렵 관아의 무지막지한 집장사령(執杖使令)과 토색질할 구실만 찾는 아전바치 구실아치들의 모진 꾀를 떠올린 것이리라. 관찰사도 호령한다는 양대인의 위세와 그들 위세를 뒷받침하는 법국의 부강함도 새삼 그를 두렵게 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거기다가 눈앞에 펼쳐진 형틀과 회초리 묶음은 그때까지의 기세를 일순에 꺾어놓고 말았다.

사내는 그 뒤로도 몇 마디 더 뻗대는 시늉을 하다가 오래잖아 죄를 자복(自服)하고 용서를 빌었다. 빌렘 신부는 그제야 형틀을 거두게 하고 그 사내를 엄하게 꾸짖은 뒤 풀어주게 하였다. 그 모든 광경을 말없이 지켜보는 동안 선망으로 그 눈빛이 가장 빛났던 것은 이번에는 안태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