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의달 산업부 차장대우

"한국의 인터넷·통신기술은 미국과 유럽 무선통신의 미래를 들여다보는 창(窓)이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Forbes)지(誌) 최신호가 '무선통신의 미래(The Future of Wireless)'라는 제목의 특집기사에서 우리나라 IT(정보기술)환경을 평가하며 내놓은 찬사(讚辭)이다.

호평은 이어진다. "언제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뜻의 '유비쿼터스'란 단어를 빼놓고는 한국의 IT기술을 논하기 어렵다. 지하철에서도 시청 가능한 휴대전화TV, 터치스크린 버스 정류장, 리얼타임 비디오 콜 등…."

사실 우리나라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이동통신망 설비율, 이동통신 가입자 비율 등에서 세계 1위이다. 반도체·휴대폰·LCD 같은 IT품목은 '글로벌 빅3' 안에 들어 있다. 지난달 우리나라 전체 무역흑자의 90%는 IT제품들이 채웠다. 외형상 우리는 'IT 강국(强國)'이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나는 IT 종사자들의 반응은 영 딴판이다. 특히 반도체·이동통신 같은 '잘나가는' 분야를 제외한 비주류 진영은 잔뜩 침울해 폭발 일보 직전이다.

"소프트웨어(SW) 업계는 지금 고사(枯死)하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는 꿈마저 사라진(dreamless) '4D 인생'입니다."(중소SW 업체 A사장) "통신분야를 제외하면 우리는 IT강국이 아닙니다. 그마저 속을 들여다보면 외국산이 대부분 휩쓸고 있어요."(벤처기업 R사 B사장)

IT강국의 위상이 흔들리는 징조는 올 들어 더 또렷해지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EF)과 프랑스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INSEAD)가 지난달 26일 공동발표한 '글로벌 IT리포트'를 보면, 우리나라는 134개국 중 정보통신 시장·규제·인프라환경(17위), 창업절차(86위), 입법기관 효과성(49위) 등에서 중하위권으로 밀렸다. 전체 순위도 11위로 2년 전(9위)보다 악화됐다. 사무용소프트웨어연합(BSA)의 조사에서 우리나라 IT경쟁력은 8위로 작년(3위)보다 5단계나 추락했고, 정보통신 활용도는 18위로 밀려났다.

이유는 무엇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IT 홀대'를 먼저 꼽는다. 단적으로 지식경제부와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지난달 말 확정된 정부의 추가경정예산안에 1조2000억원의 예산을 요청했지만, 실제 반영된 금액은 3361억원에 그쳤다. 전체 추경(28조9000억원)의 1%를 겨우 넘는 규모다. 미국과 일본 정부가 경기 진작과 IT산업 육성 차원에서 각각 40조원이 넘는 예산을 투입하기로 결정한 것과 비교하면 정말 '새발의 피' 수준이다.

또 다른 이유는 IT산업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소프트웨어(SW) 분야에 대한 무관심이다. 세계 SW시장 규모는 7400억달러 규모로 반도체(약 2500억달러)의 세 배 정도나 된다. 그러나 전 세계 100대 SW업체 가운데 국내 기업은 단 한 곳도 없다. 대표적인 토종 SW업체인 한글과컴퓨터조차 올해 연간 매출 예상치가 530억원대이다.

"SW는 건설·제조업보다 고용창출 효과가 크고 부가가치도 높아 한국 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최소한 국내시장이라도 육성하려는 의지마저 안 보이니 안타깝습니다."(서울 S대 C교수)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작년 4분기에 16억달러(약 2조원)의 순이익을 낸 구글이나 호황을 질주하는 애플, 닌텐도 같은 회사들은 모두 SW로 대박을 터트리는 기업이다. SW산업의 파워가 미래 국가 경쟁력을 좌우할 것이라는 얘기는 이런 배경에서다.

문제는 실천이다. '2018년 SW산업 세계 5강' 같은 거창한 구호만 나올 뿐 정부의 정책 집행 우선순위 등에서 뒷전으로 내밀리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우리는 겉만 번지르르한, 말뿐인 'IT강국' 신세로 주저앉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