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측이 7일 권양숙 여사가 박연차 회장으로부터 받은 10억원에 대해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조카사위인 연철호(36)씨가 박 회장에게 받은 500만달러는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고 해명한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검찰 출두가 불가피하다고 판단한 노 전 대통령이 치밀한 법리 검토를 바탕으로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한 '차단막'을 치고 나왔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노림수는?

노 전 대통령은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시한 사과문에서 "저의 집(권양숙 여사)에서 부탁하고 (박연차 회장의) 돈을 받아 사용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그 돈의 명목에 대해 "빌린 돈"이라고 별도의 해명을 내놨다.

이에 대해 법조계의 한 인사는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 철저한 계산속에서 사과문이 작성됐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일단 권 여사에게 돈이 건너갔다는 박연차 회장 등의 진술이 있는 이상, 돈을 받은 사실 자체를 부인하기는 힘들어진 상황에서 '빌린 돈'이라고 주장하면 뇌물죄 적용 등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라는 것이다. 그는 또 "이 주장을 끝까지 유지한다면 노 전 대통령이나 권 여사를 처벌하기는 만만치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조카사위인 연철호씨에게 박 회장이 전달한 500만달러에 대해선 직접 받은 돈이 아니기 때문에 '도의적인 책임'은 몰라도, 법적인 책임은 없다는 식으로 방어진지를 구축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 검찰 관계자들의 해석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에서 500만달러의 실제 주인이 노 전 대통령으로 입증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죽마고우'인 정 전 비서관에 대해서는 "혹시 정 전 비서관이 자신이 한 일로 진술하지 않았는지 걱정"이라고 함으로써, 측근들에 대한 의리를 지키고 검찰수사에 대비해서 이들을 결속시키는 효과도 동시에 노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검찰이 정 전 비서관만을 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처벌할 경우에 대비, 그 돈을 실제 사용한 사람은 권 여사라고 밝힘으로써 정 전 비서관에 대한 정상이 참작되리라고 계산했다는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그동안 보여온 스타일로 미루어 볼 때 단순히 자기 방어용이 아니라 현 정권을 향한 반격의 신호탄이라고 보는 시각도 있다. 여권의 한 인사는 "노 전 대통령측은 현 정권 유력인사와도 친분이 두터운 박연차 회장을 통해 현 정권 핵심부의 비리내용을 꿰뚫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아마도 시기를 봐 가면서 맞불 작전으로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노 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추부길 전 청와대 비서관에게 "여권에 '서로 대통령 패밀리(family)는 건드리지 않는 것으로 하자. 박연차는 우리 쪽 패밀리'라고 전하라"고 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이런 관측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盧측, 더 받은 돈은 없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을 통해 권 여사에게 전달된 10억원 외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이 노 전 대통령에게 전달한 자금이 검찰 수사에서 추가로 밝혀질지도 주목된다.

검찰은 수사 초기단계에서 박 회장의 자금이 노 전 대통령의 자녀 등에게 유입된 정황을 포착해 지금까지 자금흐름을 추적해 왔다. 검찰은 특히 노무현 정권 출범 초기에 해외유학을 떠난 노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씨에게 송금된 자금들의 흐름도 면밀히 살펴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노 전 대통령은 이 부분에 대해 "미처 갚지 못한 빚"이라고 말하면서 이 부분으로 의혹이 확산되는 것을 차단하고 나섰다.

지금까지 노 전 대통령 주변으로 흘러들어간 돈은 모두 145억원이다.

박 회장이 연철호씨에게 송금한 500만달러(당시 환율로 50억원)와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이 봉하마을 개발을 위해 ㈜봉화를 설립하면서 투입한 70억원이 있고, 노 전 대통령이 퇴임 직후 박 회장에게 빌렸다는 15억원도 검찰의 수사 대상이다. 노 전 대통령은 사저가 있는 봉하마을 개발을 위해 차용증을 써 주고 빌린 정상적인 거래라고 밝혔지만 검찰은 여전히 그 배경을 의심하고 있다. 이번에 10억원이 튀어나옴으로써 그 규모는 언제든지 늘 수 있다는 전망이 검찰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