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회장이 연철호(36·노무현 전 대통령 조카사위)씨에게 송금했다는 500만달러의 실제 주인이 누구이냐를 가리기 위한 검찰 수사가 본격화된 가운데, 노 전 대통령의 후원자인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은 3일 "2007년 8월 박연차 회장이 '홍콩에 비자금 500만달러가 있으니 가져가라'고 제안했는데 말도 안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상해 헤어졌다"고 주장했다.

당시 강 회장과 박 회장,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재단법인 '봉하'의 재원 조달을 상의한 '3자(者) 회동'에서다. '봉하'는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주도해 설립을 추진 중이다.

강 회장이 당시 '비자금'이라고 규정, '부정한 돈'이라는 이유로 받지 않은 '500만달러'는 그로부터 6개월 뒤 노 전 대통령의 조카사위 연철호(36)씨에게 전달됐다.

3일 오후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서울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을 마친 후 취재진 사이를 빠져나가고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전 비서실장은 이 돈을 '정상적 투자'라고 주장했다. 문 전 실장은 "당시 개인 간의 투자금이어서 문제없다고 판단했다"고 했지만, 대통령 퇴임 직전에 사업가(박연차 회장)로부터 친인척에게 무려 500만달러가 흘러들어 갔는데 '아무 문제 없다'고 불문에 부쳤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대목이다. 특히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라면 문제의 '500만달러'가 떳떳하지 못한 돈임을 충분히 알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임에도 이를 외면한 설명을 내놓은 것이다.

'500만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의 측근들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노 전 대통령을 엄호하고 나선 것도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하지만 '500만달러'에 대해 노 전 대통령이 알게 된 시점에 대해 측근들의 주장이 엇갈려 의혹을 더하고 있다.

강 회장은 '500만달러' 문제가 언론에 공개된 직후인 지난달 31일, "노 전 대통령은 열흘 전쯤에야 알았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2일 노 전 대통령을 면담한 뒤에도 "열흘 전쯤 알았다"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문 전 실장은 "지난해 3월 이미 정상적 투자로 판단했다"고 했다.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도 지난달 31일엔 "우리가 확인해 줄 사안은 아니다"라고 했다가, 3일 "지난해 3월쯤 알았다"고 문 전 실장과 똑같은 말을 했다.

하지만 문 전 실장은 "열흘 전쯤 알았다"는 강 회장의 말이 보도된 이후인 지난 1일에도 '500만달러'가 노 전 대통령과 무관하다는 점만 강조했지, '노 전 대통령 인지(認知) 시점'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번 사건이 불거지고 나서 알아보니 정상적으로 투자받은 돈"이라며 최근에야 알게 됐다는 식으로 말했다.

이에 따라 검찰 주변에선 검찰 수사가 진행되면서 노 전 대통령측이 이 문제를 어쩔 수 없이 공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린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검찰 내부에선 노 전 대통령측이 이 사건 관련자들에게 수사에 대비하기 위한 '가이드 라인'을 제시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또 하나의 의문은 문 전 실장 말대로 1년 전에 알았다면, 왜 1년간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았느냐는 것이다. 누가 노 전 대통령에게 '500만달러' 문제를 보고했는지를 문 전 실장 등이 속 시원하게 공개하지 않는 것도 의심스럽다.

노 전 대통령이 지난해 알았다면 분명 보고한 사람이 있을 것이고, 측근들은 누군지 당연히 알고 있을 텐데, 노 전 대통령의 김경수 비서관은 "(보고자가 누구인지는) 확인 중"이라고만 말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재임 중이던 2007년 11월 농 득 마잉 베트남 공산당 서기장이 방한(訪韓)했을 때, "박연차 회장은 내 친구"라고 소개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 회장이 당시 추진했던 베트남 화력발전소 건설 프로젝트 수주에 측면 지원한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이다.

하지만 강금원 회장은 3일 "박 회장은 돈으로 권력을 산 사람이며 로비스트다"라고 비난했다. 박 회장으로 인해 이광재 민주당 의원이 구속되고 이른바 '친노 정치인들'이 줄줄이 사법처리 대상에 거론되면서, 친노 그룹 사이에서도 박 회장을 원망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