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주아라 불리는 프랑스 신흥 자본가들은 1789년 프랑스혁명을 통해 왕정을 무너뜨린 뒤 국민공회를 만들었다. 국민공회는 체제 기조를 크게 바꾸지 않으려는 귀족 중심 왕당파와 혁신을 모색하는 부르주아 중심 공화파로 나뉘었다. 이때 왕당파와 공화파가 국왕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앉은 데서 우파와 좌파가 유래했다고 한다.

▶보수주의(Conservatism)라는 용어는 1830년 영국 잡지 '쿼털리 리뷰'의 편집 담당 존 크로커가 토리당을 가리켜 처음 썼다고 한다. 오랜 시간 발전시켜온 제도와 관습을 중시하는 정치 이념을 가리켰다. 그러나 '보수'란 정치원리라기보다 마음의 성향, 삶의 방식에 가깝다는 관점이 많다. 진보주의(Progressivism)는 영국 산업혁명이 몰고온 19세기 말 노동자 빈곤을 어떻게 치유할지 논의하는 과정에서 싹텄다. 복지제도로 빈곤을 몰아내자는 발상이었다.

▶흔히들 점진적 변화를 추구하는 우파를 '보수', 급진적 방식을 동원해 사회를 변화시키려는 좌파를 '진보'로 알지만 탈냉전 이후 그런 등식은 깨졌다. 소련을 무너뜨린 페레스트로이카는 진보적이었지만 급격한 변화를 모색하는 좌파는 아니었다. 중국에서 자본주의적 개혁을 지향하는 세력은 진보이고 공산당식 교조(敎條)에 집착하는 세력은 수구(守舊)다. '진보 우파'도 있고 '수구 좌파'도 있는 세상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한국에서만은 좋은 이미지의 '진보'라는 이름은 좌파가 독차지하고 낡고 뒤처져 보이는 '보수'는 우파 간판처럼 돼버렸다. 대표적 우파 논객 박효종 서울대 교수가 "한국의 좌파가 진짜 진보인가"라는 물음을 던졌다. 그는 "친북 좌파처럼 진보하지 않는 세력을 진보로 부르는 것은 우리가 살아온 가치에 대한 모욕"이라고 했다.

▶"1980년대 낡은 의식에 머물러 진보하지 않는 세력, 헌법적 가치에 대한 존경심도 없고 세계사 흐름이나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좌파 세력이 내건 '진보'는 '검은 백조'처럼 모순된 표현의 극치다." 박 교수는 이제 진보·보수가 아니라 좌파·우파로 지칭하는 것이 각각의 이념을 제대로 드러내는 게 될 것이라고 했다. 사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좌·우 구분보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열려 있고 닫혀 있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