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산드르 루카셴코(Lukashenko·54) 벨라루스 대통령이 국빈방문차 전용기로 러시아 모스크바를 찾은 22일, 만 4세 꼬마가 루카셴코와 함께 트랩을 내려왔다. ‘니콜라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 꼬마는 러시아 크렘린(대통령궁) 의전실의 고위 관계자들과 일일이 악수를 한 뒤 러시아 경찰의 호위를 받아 모스크바 시내로 들어왔다.

대통령과 정확히 50살의 나이 차이가 난 꼬마는 대체 누구였을까. 일반 러시아 국민들은 니콜라이가 루카셴코의 손자였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막내 아들로 판명됐다. 일부 러시아 언론은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루카셴코가 공식 행사에 아들을 데리고 다니는 기이한 행동을 한다”며 “혹시 자신의 후계자로 만들려는 것 아니냐”는 추측보도를 하기 시작했다.

루카셴코 대통령도 이를 굳이 부인하지는 않고 있다. 그에게는 1975년 결혼했던 부인 갈리나 로디오노브나와의 사이에 두 장성한 아들 빅토르와 드미트리가 있다. 루카셴코 대통령은 2년 전 언론과의 회견에서 이들 중 누구에게 자리를 물려줄 것이냐는 질문을 받고 “큰 아들도 둘째 아들도 내 후계자가 아니다”라고 부인했었다. 그러면서 “2004년에 태어난 막내(어머니는 미상) 니콜라이가 있는데 그에게 작은 것을 준비중이다. 그는 아주 재능있는 아이”라고 말했다.

부자세습설(說)은 이 때부터 나오기 시작했고, 작년 10월 말 러시아와 벨라루스간 연합군사훈련 장소에 루카셴코 대통령과 니콜라이가 나란히 벨라루스 군사령관 복장을 하고 모습을 보이면서 불거졌다. 그러다가 22일 러시아 국빈방문때 벨라루스 공식 대표단의 일원으로 니콜라이를 동행시킴으로써 증폭된 것이다.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라고 불리는 루카셴코는 1991년 독립 이후 1994년 치러진 첫 자유선거에서 대통령에 당선돼 벌써 15년째 벨라루스를 통치하고 있다. 당시에는 부정부패 척결과 물가 안정, 폭력조직 소탕 등을 내세워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집권 이후 강력한 독재체제를 구축했고, 유럽 등 서방 외교관들을 국가 전복 혐의로 기소하는 등 친(親)러시아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왔다.

심지어 자신을 제외하곤 ‘프레지던트(President)’란 직함을 쓰지 못하게 해 기업 회장들은 ‘체어맨(Chairman)’으로 명칭을 바꿔야 했고 자국 정보기관의 이름도 소련 시절의 KGB를 본따 ‘벨라루스 KGB’라고 칭했다.

1996년 11월에 치러진 국민투표를 통해 초대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7년(2001년까지)으로 늘리고 의회 해산권을 비롯해 선관위원 및 헌법재판관, 일부 국회의원 임명권 등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강화했다.

지난 2004년에는 집권 연장을 위해 헌법에서 3선(選) 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개헌 국민투표를 발의, 통과시킨 뒤 2006년 대선에서 3선에 성공했다. 이 때문에 그의 임기는 일단 2013년까지이지만 사실상 종신(終身)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많다. 여기에다 부자세습설(說)까지 겹침으로써 벨라루스의 민주화는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