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여권의 유력인사들이 지난해 7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 착수 이후 세무조사 무마와 검찰 고발을 저지하기 위한 '대책회의'를 수시로 가진 것으로 알려지면서 정치권에 파문이 일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최대 후원자로 알려진 박 회장의 구명을 위해 현 여권 유력인사들이 발벗고 나선 이유가 이번 검찰 수사를 통해 밝혀질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여권 인사가 왜?

검찰 관계자들에 따르면 박 회장의 구명을 위한 대책회의에는 천신일 세중나모여행사 회장,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 등이 참석했다.

천씨와 이 전 수석은 지난 대선에서 공(功)을 세우면서 현 정권과 인연을 맺었으며, 검찰 출신인 이 전 수석은 이를 기반으로 핵심 공직에도 진출했다.

동시에 이들은 오래전부터 박 회장과는 개인적으로 밀접한 친분을 유지해온 인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들이 박 회장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책회의에 수시로 참석해 박 회장 구명에 나섰다는 사실을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특히 천씨와 가까운 한 법조계 인사는 "단순 탈세사건이니 법률적인 자문을 해달라"는 천 회장의 권유로 대책회의에 참여했다가 사태가 심상치 않게 돌아가자 손을 뗀 것으로 알려졌다. 단순한 법률 자문 이상이 있었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정권 실세들의 자금줄 역할을 하면서 각종 비리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끊임없이 제기돼 현 정권이 '손봐야 할 대상'으로 거론됐던 인물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 정권 출범에 공헌을 했던 천씨와, 사정작업을 총괄 지휘하는 청와대 민정수석 출신의 이 변호사가 박 회장의 구명을 위해 뛰게 된 데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던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박 회장이 검찰 수사를 받게 될 경우 숨기고 싶은 부분이 추가로 공개될 가능성을 우려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검찰은 박 회장의 주변 계좌와 주식 소유 현황을 추적하면서 천씨와의 금전거래 관계를 살펴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두 사람 사이에는 채권 채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고, 한 검찰 관계자는 전했다.

◆박연차 회장, 큰소리친 이유는?

박연차 회장은 작년 12월 검찰 출석에 앞서 "세금만 납부하면 해결될 일"이라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대책회의에 참석한 박 회장은 "특별한 일은 없을 것"이라며 큰소리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수사를 앞둔 박 회장이 이런 자신감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당시 검찰 주변에선 박 회장이 '믿을 만한 곳'에 '보험'을 들었다는 소문이 나돌았고, 실제로 박 회장은 끝까지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고 그의 한 지인이 전했다.

박 회장은 실제로 추부길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게 세무조사와 검찰 고발을 무마해 달라며 2억원을 건넨 것으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났다.

이 밖에 박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와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석연치 않은 대목이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박 회장이 농협으로부터 휴켐스를 헐값에 인수했다는 의혹과 관련, 서울중앙지검은 지난해 5월부터 은밀하게 내사를 진행하다 농협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이 기각되자 일단 수사를 중단했다.

이 사건 수사는 대검 중수부로 지난해 11월 넘겨지면서 본격적으로 재개됐다. 박 회장은 검찰이 휴켐스에 대한 수사를 벌이지 않을 것이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고 박 회장 주변 인사들은 말한다.

국세청은 작년 11월 박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 결과를 청와대 민정수석실을 건너뛰고 이 대통령에게 직보(直報)했다. 국세청 내부에서도 조사팀장이 세무조사 상황을 국세청장에게만 보고하도록 하고 다른 모든 인사들을 보고 라인에서 배제했다. 이 역시 박 회장과 연결된 누군가의 '입김'을 의식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편 이번 수사에 대한 이명박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말 법무부의 청와대 업무 보고 때 이 대통령은 "현 정부는 도덕적 약점 없이 출범한 정권인 만큼 법을 엄정히 집행해 달라"고 주문한 바 있다.

검찰은 이를 성역 없이 수사하라는 사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청와대는 작년 6월 청와대를 나온 이종찬 전 수석이 이번 사건의 변호인으로 참여하려 하자 이를 말린 것으로 전해져 그 배경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