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장'은 캄캄했다. 지난 20일 오전 9시30분 강원도 태백탄광. 높이 2.5m, 폭 3m짜리 갱도를 따라 갱 입구에서 3.5㎞쯤 내려간 막다른 곳에 탄(炭)으로 가득 찬 검은 암벽이 나타났다. 곡괭이로 벽을 찍어내리던 광부 김남수(55)씨가 '이런 곳까지 뭐 볼 게 있다고 왔느냐'는 표정을 지었다. 앞머리가 희끗희끗한 이 초로(初老)의 거한(巨漢)은 올해로 광부생활 20년째다. 그는 세번 막장을 떠났다. 택시도 몰아보고 막일도 해봤다. 그리고 번번이 돌아왔다.

"힘에 부치거나 목돈이 필요해 퇴직금을 받고 떠났다가도 다른 일로 먹고 살 수 없으니 돌아올 수밖에요. 이번에도 6개월 놀다가 대학 다니는 자식들 생각하고 돌아왔지 뭐, 별거 있을까 봐…."

태백탄광은 강원도 삼척 경동탄광과 함께 우리나라에 남은 민영(民營) 탄광 2곳 중 하나다. ㈜태백광업이 1995년 4월 인수해 14년째 운영해 왔다. 이곳에서 나온 탄 가루는 국내 최고(最高) 기차역인 추전역을 통해 화력발전소와 연탄공장으로 운반된다.

태백탄광은 지난달 말 59세 이상 광부들 중 희망 퇴직자 49명을 내보내기 앞서 이들을 대체할 인력을 뽑기 위해 광부 모집 공고를 냈다. 태백탄광 관계자들을 놀라게 한 일은 그 다음에 일어났다. 회사와 노조 사무실에 이력서 198장이 밀려든 것이다.

㈜태백광업 최종원(57) 대표는 "불황과 고유가로 석탄 소비는 늘고 일자리는 줄면서 벌어지는 현상"이라며 "올해 채탄 목표량(13만t)을 작년(11만t)보다 늘려 잡은 참이라 노조와 협의해 당초 계획보다 16명 많은 65명을 새로 채용했다"고 했다.

지난 20일 강원도 태백탄광에서 광부들이 탄차를 타고 탄광으로 들어가고 있다. 최근 모집 공고를 낸 이 작은 탄광에 전직 광부들이 몰렸다. 탄광을 떠났지만 일거리를 찾아 다시 막장에 온 사람들이다.

신태영(50) 노조위원장은 "이력서가 넘쳐서 돌려보낸 사람까지 합치면 200명이 훨씬 넘게 지원했다"며 "대부분 광부 경력을 가진 사람들로 공사판 일용직을 전전하거나 자영업을 하다가 실패해서 막장으로 돌아온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전직 광부들이 대거 지원하는 바람에 광부 경력이 없는 사람이나 외지인은 한 명도 뽑히지 못했다.

막장의 어둠은 농밀하다. 처음 막장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둠의 농도와 악취에 짓눌리기 쉽다. 땅 밑에서 올라오는 메탄 냄새에 갱도를 떠받치는 선수목(지름 25~30㎝의 소나무 기둥)이 썩는 냄새가 뒤섞여 코를 찌르고, 대기 중의 탄 가루가 폐를 파고든다. 광부들이 곡괭이와 전기드릴을 휘두를 때마다 벽에서 시커먼 탄 덩어리들이 우수수 뜯어져 나온다. 보조공들이 땅에 떨어진 탄 덩어리를 삽으로 탄차(炭車)에 퍼 담아 바깥으로 내보낸다.

태백탄광에서 일하는 광부는 암석을 뚫는 굴진(掘進)과 채탄을 맡는 선산부 50명, 갱 보수 등의 보조업무를 맡는 후산부 110명 등 160명이다. 이들은 하루 8시간씩 3교대로 일하고 각종 수당과 성과급을 포함해 한 달에 300만~400만원을 받는다. 자녀 3명까지 대학 등록금을 정부가 지급한다.

이들의 평균 나이는 52세다. 탄광 관계자는 "나이 쉰 넘어서 죽을 각오를 하고 막장에 들어가서 죽지 못해 하는 게 이 일"이라고 했다. 막장에 온 가장(家長)들은 "요즘 같은 불황에 월급 300만원을 받을 수 있는 직장이 막장 말고 또 있느냐"고 했다.

갱도 보수작업을 맡은 장재만(52)씨는 서울의 한 보육원에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친구 권유로 광부로 취직해 태백에 정착했다. 25년간 한보탄광에서 일하다 지난해 폐광된 뒤 5개월간 태백시 인근 공사판을 전전했다. 그는 이달 초 태백광산에서 광부 일을 다시 시작했다.

"이 나이에 받아주는 곳도 없고, 주유소 같은 데선 월 70만~80만원밖에 못 받으니 달리 갈 데가 없지요. 대학 다니다 군대 간 아들놈 뒷바라지 하려면 탄광에서라도 일해야겠다 싶어 몇 달간 '언제 태백탄광에 자리가 나나' 알아봤어요."

전직 광부 김모(50)씨도 이날 태백탄광 사무실에 들러 장화와 탄광용 마스크를 지급받았다. 그는 2001년까지 삼척탄좌에서 일하다 이곳이 폐광되면서 탄광을 떠났다. 화물트럭도 몰고 6인승 밴도 몰았지만 벌이는 갈수록 신통찮았다.

그가 회사 사무실에 들러 장비를 지급받는 동안 아내 김모(여·47)씨는 건물 바깥에서 시름 깊은 얼굴로 남편을 기다렸다. 아내 김씨는 "이런저런 일자리를 알아봤지만 50줄에 접어든 남편을 반기는 곳은 아무 데도 없었다"고 했다.

"남편이 위험한 막장에 들어가는 모습은 다시 보고 싶지 않았는데, 일할 데가 없으니 어쩔 수 없죠. 가족들을 위해 큰 결심한 남편이 고마워요."

광부 경력이 없어 면접도 못 보고 떨어진 A(36)씨는 김씨 부부가 부럽기만 하다. A씨는 전자제품 대리점에 다니며 모은 돈으로 치킨집을 열었다 망한 뒤, 2년째 공사판 일용직과 중국집 배달원을 병행하며 한 달에 150만~160만원씩 벌어 아내와 초등학생 두 아들을 부양해왔다.

그는 "아버지가 30년 넘게 막장에서 탄을 캐다 진폐증으로 돌아가셨다"며 "어렸을 땐 '광부만은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혹시나' 하면서 (탄광에서 연락오기만)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나이가 조금만 젊었어도 외지에 나가볼 텐데…. 막장에서 불러만 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당장이라도 달려갈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