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 중수부가 22일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세무조사를 중단시켜 달라는 청탁과 함께 2억여원을 받은 혐의로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박 회장이 돈을 줬다는 작년 9월은 추씨가 "대운하 반대 세력은 사탄의 무리"라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켜 청와대를 떠나 실직자(失職者) 생활을 하던 무렵이다. 추씨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일하다 청와대에 들어갔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견인으로 노(盧) 정권 5년 동안 권력 밖의 최대 실세로 통했다. 대통령과 언제든지 전화통화를 할 수 있었다는 그는 대통령 비서실장들과도 흉허물 없이 지낼 정도로 청와대와 권력 생리에 훤한 인물이다.

이런 사람이 현직에서 물러난 청와대 비서관, 그것도 사정(司正) 업무가 아니라 홍보 일을 했던 추씨 같은 변두리 인물에게 2억원이나 건네며 세무조사 중지라는 어려운 청탁을 했다는 게 선뜻 이해되지 않는다. 검찰은 이번 사건이 실패한 로비라고 설명하지만 박 회장이 추씨라는 심부름꾼을 써서 연결하려 했던 진짜 상대방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청와대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박 회장이 정권이 바뀌자마자 갑자기 바보 노릇을 했다는 얘기밖에 되지 않는다. 검찰이 현직 여권 고위직이란 '살아 있는 권력'을 보호하면서도 여권 인물을 수사한다는 인상을 주려고 실직(失職) 비서관을 끼워 넣기 한 게 아니냐는 의심을 벗기 위해서도 로비의 최종 대상인물을 명확히 해야 한다.

전 정권의 대통령 피붙이나 권력 핵심 인사들은 사회 정의라는 말을 달고 지내다시피 했다. 그런 그들이 입으로는 사회 정의, 손으로는 뇌물을 챙겨왔다는 것이 수사 때마다 드러났다. 그들 모두 현직에 있을 때 뒷주머니로 돈을 챙겼다. 힘없는 전직에게 생돈을 갖다 바칠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박 회장 돈을 받았다는 명단인 '박연차 리스트'엔 70여명의 정·관계 인사들 이름이 올라 있다고 한다. 박 회장처럼 권력의 풍향에 민감한 사람이 한나라당 대선 후보들이 등장한 2006년 중반부터 정권교체가 기정사실처럼 돼 있는데도 '다가올 정권' 사람들을 모른 체하며 무방비 상태로 지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죽은 권력은 어느 수사기관도 건드릴 수 있다. 검찰은 살아 있는 권력을 단죄할 때 그 사정의 칼에 위엄이 서리는 것이다. 검찰이 검찰답다는 말을 들어야 할 때다.